지우개
페이지 정보
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6-09-12 03:52 조회8,058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지우개
존 브로크만이 쓴 “지난 2000년 동안의 위대한 발명” 이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세계의 지성인 110명이 뽑은 121가지 위대한 발명품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신기하고 특이한 것은 그중에 [지우개] 가 끼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우개로 인간의 실수한 것을 수정하는 작업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인류 문명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우개로 수정할 수 없었다면 위대한 예술가의 데상이나, 스케치, 또는 시인이나 음악가의 걸작이 태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인간의 완벽한 도덕성이나 행위로서 의를 판단한다면 인류는 실수에서 못 해어 나오는 미완성의 인생들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완전한 타락성에서, 죄에 상처에서 벗어 날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용서의 은총이라는 지우개 때문에 우리는 완성의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수억의 사람들이 출연하고 있는데, 실망을 준 사람, 기쁨을 준 사람, 실패한 사람, 성공한 사람, 놀라운 감동을 준 사람이 많습니다.
사울이라고 하는 바울은 그렇게 큰 감동을 주는 이유는 그 배후에 하나님의 무한한 용서라는 지우개로 지운 흔적이 있게 때문입니다.
그토록 흠 많고 실수 많은 다윗같은 인물이 위대하게 그려진 이유는 그들이 완벽성 때문이 아닙니다. “용서라는 하나님의 은혜를 가장 많이 맛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용서라는 지우개로 지우고 새롭게 그린 때문입니다.
사람을 죽인 흠 많고 실수 많은 모세같은 인물도 위대하게 그려진 이유는 그들의 잘남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용서라는 하나님의 은혜역사입니다. 지우개라도 고무 지우게가 아니라, 사람이 사용하는 지우개가 아니라. 하나님이 사용하는 지우게 용서 때문에 위대한 인물이 된 것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 은혜입니다.
에베소서 2:10절에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걸작품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용서의 은혜로
지워지고, 개작되고, 수정되어서, 실수와 허점, 투성이인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앞에서 의롭다 인정받는 새로운 피조물로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죄사함 받았다고 선포하신 그리스도의 용서로 우리의 지난 과오들은 완전히 지워졌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무한한 용서라는 “지우개” 의 은총역사입니다. 더 이상 과거에 연연하지 맙시다. 주님의 용서의 은혜로 완전히 지워졌음을 믿으지시기를 바랍니다.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주님의 무한한 용서로 의롭게 될 수 있음을 믿습니다.
이제부터는 이미 지워진 과거에 연연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허물과 실수, 문제 투성이인 우리를 용서로 깨끗케 해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열어 주시는 미래에만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바울같이 주님이 열어 주시는 미래 세계를 향하여 달려가는 사명자의 손에는 용서라는 “지우개” 복음만 들고 가는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 각자신이 주님의 용서의 지우개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우리는 서로 용서의 지우개로 지워주고, 지움 받는 사람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눅11:4) 할렐루야!
존 브로크만이 쓴 “지난 2000년 동안의 위대한 발명” 이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세계의 지성인 110명이 뽑은 121가지 위대한 발명품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신기하고 특이한 것은 그중에 [지우개] 가 끼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우개로 인간의 실수한 것을 수정하는 작업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인류 문명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우개로 수정할 수 없었다면 위대한 예술가의 데상이나, 스케치, 또는 시인이나 음악가의 걸작이 태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인간의 완벽한 도덕성이나 행위로서 의를 판단한다면 인류는 실수에서 못 해어 나오는 미완성의 인생들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완전한 타락성에서, 죄에 상처에서 벗어 날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용서의 은총이라는 지우개 때문에 우리는 완성의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수억의 사람들이 출연하고 있는데, 실망을 준 사람, 기쁨을 준 사람, 실패한 사람, 성공한 사람, 놀라운 감동을 준 사람이 많습니다.
사울이라고 하는 바울은 그렇게 큰 감동을 주는 이유는 그 배후에 하나님의 무한한 용서라는 지우개로 지운 흔적이 있게 때문입니다.
그토록 흠 많고 실수 많은 다윗같은 인물이 위대하게 그려진 이유는 그들이 완벽성 때문이 아닙니다. “용서라는 하나님의 은혜를 가장 많이 맛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용서라는 지우개로 지우고 새롭게 그린 때문입니다.
사람을 죽인 흠 많고 실수 많은 모세같은 인물도 위대하게 그려진 이유는 그들의 잘남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용서라는 하나님의 은혜역사입니다. 지우개라도 고무 지우게가 아니라, 사람이 사용하는 지우개가 아니라. 하나님이 사용하는 지우게 용서 때문에 위대한 인물이 된 것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 은혜입니다.
에베소서 2:10절에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걸작품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용서의 은혜로
지워지고, 개작되고, 수정되어서, 실수와 허점, 투성이인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앞에서 의롭다 인정받는 새로운 피조물로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죄사함 받았다고 선포하신 그리스도의 용서로 우리의 지난 과오들은 완전히 지워졌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무한한 용서라는 “지우개” 의 은총역사입니다. 더 이상 과거에 연연하지 맙시다. 주님의 용서의 은혜로 완전히 지워졌음을 믿으지시기를 바랍니다.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주님의 무한한 용서로 의롭게 될 수 있음을 믿습니다.
이제부터는 이미 지워진 과거에 연연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허물과 실수, 문제 투성이인 우리를 용서로 깨끗케 해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열어 주시는 미래에만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바울같이 주님이 열어 주시는 미래 세계를 향하여 달려가는 사명자의 손에는 용서라는 “지우개” 복음만 들고 가는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 각자신이 주님의 용서의 지우개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우리는 서로 용서의 지우개로 지워주고, 지움 받는 사람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눅11:4) 할렐루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