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주기도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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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iros 작성일23-03-11 10:39 조회6,49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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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마태복음 6:11
제목 :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Τόν άρτον ήμών τον έπιούσϊΌν δός ήμιν σήμερον
톤 아르톤 헤몬 톤 에피우시온 도스 헤민 세메론
그 양식을 우리의 그 일용할 주옵소서 우리에게 오늘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άρτον ήμών τόν έπΐΌύσιον δός 아르톤 헤몬 톤 에피우시온 도스)일용할 양식이란 영적 양식을 가리키는 것이며, 믿음으로 나아가면 육신의 양식은 따라오게 된다.
마태 6:25에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살까 몸을 일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아시기 때문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구하지 말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모든것을 더하여 주신다고 하였다. 영이 새 생명으로 살아 나아가려면 영적 양식을 날마다 먹어야 한다. 먹지 못하면 영이 날마다 새롭게 살아 나아갈 수 없다.
중생한 영은 죽지 아니하고 늘 살아 있으나 새 생명의 역사가 중단되지 않으려면 날마다 영적 양식을 받아먹고 자라나야 한다. 그러므로 육신의 양식보다 영의 양식이 훨씬 더 중요하다 이것은 마치 육신의 목숨보다 영혼의 생명이 더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마10:28, 요11:25-26)
일용할 양식을 육신의 양식이라고 하면 마태 6:25-31의 말씀과 모순된다. 왜냐하면 육신의 양식은 구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또 육신의 양식보다 영의 양식이 더 중요한데 육신의 양식은 구하면서 영의 양식을 구하지 않는다면 옳지 않다.
요한 4:34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 ”고 하셨고, 또 썩을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하라고 하셨다(요5:27). 성도가 영의 양식을 받아 먹으려면 우선 주일날 영의 양식을 받아 먹어야 한다. 주일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먹고 영이 새 힘을 얻어 소생함을 입어야 한다. 교역자들은 주일날 하나님의 양떼에게 하나님의 신령한 양식을 공급하여 양떼들의 영이 새 힘을 얻고 소생하도록 길러 나아가야 한다(마24:45).
목사가 강도(설교)를 할 때에 성령과 진리로 가르치지 못하면 영의 양식이 되지 못한다. 교역자가 먼저 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먹고 새 힘을 얻어 그 영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줄 때에 교인들의 영이 새 힘을 얻어 살아나아갈 수 있다.
성도가 주일날 영의 양식을 얻어먹고 그 말씀을 새김질하며, 자신이 날마다 성경을 읽고 영으로 깨달아 힘을 얻어 나아가야 한다.
날마다 성경을 읽으면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영의 양식이 되게 하려면 기도를 많이 하고 애써야 된다. 일용할 양식을 “내게” 달라하지 않고 “우리에게” 달라고 했다. 일용할 양식을 먹으려면 사욕을 떠나 “우리”의 세계에 들어가야 하고 “우리” 전체가 먹기 위해 일용할 양식을 구하여야 된다. 일용할 양식을 이기주의로 구하면 먹지 못한다.
이기주의와 욕심과 자기를 위하는 것을 다 내어 버라고 예수님의 세계에 들어가야 영의 양식을 먹을 수 있다.
⬔ 육의 양식에 대하여
잠언 30:8-9에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읍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 함이니이다 ”라고 하였다·
여기에서는 육신의 양식을 말하고 있다. 육신의 양식은 너무 많으면 배가 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기 쉽고 너무 적으면 가난하여 도적질하기 쉬우니 너무 가난하게도 말고 부하게도 말게 하여 달라는 뜻이다. 이것은 인간의 연약함을 나타내는 기도이다·
사도바울은 빌립보 4:11-13에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주사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하였다.
여기서 바울은 “일체의 비결” 즉 풍부할 때나 가난할 때나 환경에 지배 받지 아니하고 바른신앙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참된 신앙에 서면 배부를 때나 배고플 때나 물질에 제재를 받지기도를 할 필요가 없다. 주기도문의 일용할 양식이 육신의 양식이라고 하면 바울같은 사람은 이 기도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 아닌가 !
주기도문은 기도의 표준이기 때문에 참 믿음에 서있는 사람도 주기도문 대로 기도해야 된다· 따라서 “일용할 양식”은 영의 양식으로 보아야 한다· 성도는 영이 살아가는데 목표를 두어야 한다·
성경의 모든 원리가 영을 살려 나가는 것이 목적이며 육신을 살려 가는 것이 표준이 아니다· 영을 살려 나가기 위한 주 기도와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한 기도이다. 그러므로 영의 양식을 먹고 영적 생명이 장성하며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
그러므로 영의 양식을 구하는 자에게 육신의 양식은 따라오게 되어 있다·. 말씀 먹는 자가 떡 먹는 자를 잘 부릴 수 있고 육신을 잘 사용할 수 있다.·
일용한 양식 (건강, 가족, 이웃, 생활전반 내포함) 은 장래를 위해 비축할 양식을 위하여 구하는 것이 아니고 ,,,,,,호화롭게 사치할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고,,,, 최소한 필요한 양식을 위하여 기도할 것을 가르쳤다. 이렇게 받는 자는 자연스럽게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할 것이다·
일용한 양식은 각자에 차이가 있다· 혼자 사는 자와 사업하는 시장의 일용할 양식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일용할 양식은 영의 양식이라, 영의 사람이 살면, 육사람도 산다. 할렐루야!
⬖ 하늘 양식
사람은 먹어야 살기 때문에 양식은 곧 생명입니다. 양식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땅의 양식이고 다른 하나는 영의 양식입니다. 땅의 양식에는 종류가 많아도 공통점이 있습니다. 들어갈 때는 달라도 나올 때의 똑같다는 것이죠. 아무리 맛난 고기나 최고급 음식, 값비싼 해산물을 먹었다 해도 그 결과는 같습니다. 비싸고 좋은 걸 먹었다고 금덩이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의 양식은 다릅니다. 먹는 대로 삶이 달라집니다. 사서삼경을 먹은 사람은 자신의 출세를 위해 삽니다. 도덕경을 먹은 사람은 세상의 이치에 달관해 무위자연의 삶을 꿈꿉니다. 마르코스의 유물론 사상을 먹은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세상을 바꾸려 합니다. 하다못해 연애소설을 자주 먹는 사람은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고 삼류인생 스토리가 가득한 막장 드라마를 많이 먹고 산 사람들은 안타까운 인생을 삽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영적인 양식을 먹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인생에 열리는 열매가 달라집니다. 하늘의 양식을 먹고 삽시다. 영생의 양식을 먹고 삽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라는 요한복음 6장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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