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 강해 > 조직신학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신학강의실
조직신학

사도신경 강해

페이지 정보

작성자 Kairos 작성일18-08-24 15:41 조회1,928회 댓글0건

본문

사도신경 강해 



              사도신경(使徒信經) 에 대하여

기독교(예수교)가 시작된지 2000년 이 지나는 동안에 변함없이 우리들에게 있는 것은 성경이다. 또 사도신경 이다.
성경과 사도신경은 기독교의 신앙과 신학을 바쳐주는 두 기둥이라고 볼 수 있다. 성령하나님의 특별 섭리하에 성경 66권이 존재하게 되었고, 또 사도들의 신앙고백이 성령님의 감동으로 고백되어, 편집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기독교가 뭐지?’ ‘어떻게 살아야 하지?’ 등 혼란한 질문 속에서 그리스도인들마저 자신의 정체성을 바로 알지 못할 때, 우리가 붙잡아야 할 핵심교리가 무엇인지 명쾌하게 제시해 주는 것이 사도신경이다.

마틴 루터는 “사도신경은 우리들이나 초대교부들이 고안해 낸 것이 아니다. 마치 꿀벌들이 온갖 아름다운 꽃에서 꿀을 모으듯이 위대한 선지 사도들이 전해준 성경의 가르침을 오묘하게 요약한 것으로, 어린이들과 순수한 기독교인들의 유익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 라고 말했다.
즉 신비한 성경 66권을 아름다운 꽃에 비유한다면, 사도신경은 그 꽃에서 꿀벌들이 꽃가루를 모아 꿀을 만들어 놓은 것과 같다. .....교리가 전부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기독교의 신앙의 핵심이나 기독교와 다른 종교, 사상들과의 차별성 정도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알아야 할 것이다.
이 고백 강해서가 자신의 신앙에 대해 고민하는 그리스도인들의 필요를 조금이나마 채워 공감케 하며, 우리들의 신앙의 고백이 되리라 믿는 바이다.
                                                        할렐루야!
    
                                   2007년 7월 1일   양복석 박사 편저
          







          사도신경(使徒信經)(The Apostles Creed) 해설
      
[서론]    
    1. 사도신경은 마16:16, 요6:69, 마10:32, 마28:19, 롬10:9-10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2.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하나님에 대한 고백이다.
     3. 사도신경은 사도들의 공동작품이라 한다. 후대에 추가 된 것도 있다한다.
     4. 70인 역(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이 이루어진 전승과 비유 할 수 있다.
     5. 열두 사도가 한 사람씩 각각 다른 조항을 써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베드로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안드레는 성령 감동을 받아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야고보는 성령 감동받아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이렇게 전체를 이루었다.
     6. 사도신경은 21가지 고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부하나님(3개) 성자하나님(12개) 성령하나님(6          개)로 구성되어 있다.
     7. 사도 때부터 고백하여 내려오던 것을 AD 390년에 공식화 하였다.
     8. 1517년 종교개혁 후에 개혁파(루터파, 장로파)에서는 ‘거룩한 기독교회’(Holy Christian C            hurch)로 번역하여 사용하고, 카톨릭에서는 ‘거룩한 가톨릭 교회’ (Holy Catholic Church)            로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9. 사도신경으로 우리들의 신앙을 고백합시다. 즉 사도들의 신앙고백같이 우리들의 고백이 있어  
        야 한다. 이러한 신앙고백은 개인의 신앙생활과 교회의 내적생활에 있어서, 하나의 필수적 조          건이다.
        신학이 형성되기 전에, 교리적 싸움이 있기 전에, 이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이 있          었다. 이 신앙고백을 중심으로 해서 교회가 형성 되었다. 사도신경은 성경 다음으로 중요하다          고 본다. 12사도들의 삼위일체 하나님(성부 성자 성령)에 대한 신앙고백이기 때문이다.

[사도신경의 전문을 순서배열로 기록하여 보면]

一.성부 하나님(3가지)
① 전능하사
② 천지를 만드신
③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二.성자 예수 그리스도(12가지)
(1) 예수그리스도의 신분에 대한 고백 4가지
④ 그 외 아들
⑤ 우리 주
⑥ 예수
⑦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2)예수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고백 8가지
⑧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마리아 통해 오시고)
⑨ 본디오 빌라도 에게 고난을 받으사
⑩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⑪ 장사한지
⑫ 사흘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고
⑬ 하늘에 오르사
⑭ 전능하신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⑮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려 오시리라
三.성령 하나님(6가지)
⑯ 성령을 믿사오며
⑰ 거룩한 공회와
⑱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⑲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⑳ 몸이 다시 사는 것과
21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해석)
一. 성부 하나님(3가지)

            (1) 전능하사 (창49:24,시132:2, 시132:5, 사1:24,사60:16)

나의 하나님은 전능하셔서 모든 것을 다하실 수 있는 무소 불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내가 믿사오며,,,.’ 고백이다.  

전능이란 말의 뜻은 “전적으로 능하다” “모든 것에 있어서 가능하다” 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것’  이란 말과  ‘가능하다‘ 는 말로 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이란 말은 문자 그대로 “무엇이든지”라는 뜻이다. 우리가 알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아름다운 것과 더러운 것, 선한 것과 악한 것, 합리적인 것과 비 합리적인 것, 이성적인 것과 감정적인 것,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 물질계 것과 영계 것 등 무엇이든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전부 다”라는 뜻이다.
전능이란 말에는 또한 하나님은 동시에 어려운 것도, 쉬운 것도, 악한 것도, 더러운 것도, 보기 싫은 것도, 만들 수 있고 사용할 수도 있다. 이와같이 하나님에 대하여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분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속성 중, 죄성에 대한 것은 제외되며, 이미 타락한 것도 사용하시는 분이시다.

또 이 “가능하다“ 이란 말은 하나님에게는 불가능이란 말은 없다는 뜻이 되겠다.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고,  때로 악을 없이 하지만, 악한 것도 사용하신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시는 분이시다.
만일 악한 일을 하신다고 하면, 하나님은 악한 자가된다. 하나님은 전적 선한 분이시다. 그런데 악을 만들었다면 죄의 책임을 하나님이 지야 하므로 모순이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한 뜻에서 행하는 것이다. 인간 생각으로는 악을 행한 것 같으나, 그렇지 않다. 선한 일에 대립되는 것을 꺾는 것이다,. 악한 자를 더 악한 것을 사용하여 꺾는 것이다.
이사야 45:7절에 “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이미 타락하여 있는 것을 사용하신다.
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초대교회는 말할 수 없는 어려움 가운데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었고, 2000여년간 교회사가 엮어져나가는 동안 수 없는 박해 가운데서도 그들은 신앙을 지켰으며, 성스러운 투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삼상2:6-9)=“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  이 전능하신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믿음의 대상이 되신다. 따라서 우리도 “하나님은 전능 하시다.“ 라고 고백해야 한다.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는 무소불능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내가 믿사오며.

                     (2)  천지를 만드신  (창1:1-31, 2:4-7)

온 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 하시고, 통치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믿사오며,,,. 고백이다.

우주만물이 어떻게 시작이 되었으며, 그 본질적 성격이 어떠한 것인가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창조설에는 크게 두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점진발전설이고 다른 하나는 돌연발생설이다.
①점진 발전설: 희랍의 우주관을 들 수 있다. 풀라톤은 그의 저서 ‘티메우스’ 라는 책에서 말하기를 신은 좋은 건축가로서 이데아에서 생각한대로 우주를 만들었는데, 만들 때에 이미 존재한 물질을(재료) 가지고 우주를 만들었다고 한다.
혼돈 속에 물질을 뽑아내서 이 보이는 우주(코스모스)를 만들었다고 한다.  무신론자, 진화론자, 휴머니스트, 무종교인들의 지지를 많이 받는다.
②돌발 발생설:이 설은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것으로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냐 세계가 이미 존재해 있던 어떤 물질에서 이렇게 발생이나, 진화된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주장이다.·
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었을 때, 하나님이 말씀으로 해가 있으라, 달이 있으라, 땅이 있으라, 동물이 있으라 하는 식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제일 마지막에 사람을 만드셨는데, 흙으로 자신의 모양을 만들어서 거기에 생기를 넣어 사람이 되게 했다는 주장이다. 이것을 학술적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고 한다. 하나님의 직접창조설을 믿는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을 천지를 만드신 창조주로 믿고 고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중요한 이유 몇 가지를 설명한다면 대략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이 천지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주로 믿는 동시에, 그가 직접 모든 것을 건축하시고, 조각하시고, 기술로 조형하신 것을 믿는 것을 특별한 의미가 있다.(건축가, 조각자 기술자다)  
다른 종교는 우연히 우주 만물이 있었다고 말하나, 기독교는 하나님이 직접 모든 것을 만드셨다고 믿는다.
(2)신을 창조주로 믿는 신앙은 현 우주와 세계를 높이 평가한다는 의미이다. 이 자연계나 우주가점진발전설로 믿으면,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른 것으로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현 우주나 세계에 항구적인 가치를 부여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세상은 하나님이 지으시고 계속 주관하시고, 계신다고 믿을 때, 우리는 함부러 세상이나 자연을 파괴해서는 안된다. 이 자연이나 세상이 사람의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님 소유이기 때문이다. 딤전 4:4절에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다‘고 하였다. 선한 것을 타락시키지 말아야 하며, 하나님이 주신  만물과 땅 등, 사람이 차지하여 소유물로 삼아, 범죄하고, 전쟁으로 차지하려고 범죄하고 있다. 하나님이 주신 자연과 만물과 땅을 선용하고, 선행해야 한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이기 때문에, 우리는 극히 귀중하게 취급해야 하며, 그것이 가지고 있는 본유적인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3)하나님이 사람은 자기 형상대로 창조하셨기에, 각자에 자유성, 우월성, 존귀성이 있어 하나님 관계를 잘 유지하고, 사람관계를 잘 유지하여,  하나님의 인격성을 닮아서 영화구원을 얻게 해야 한다.  
(4) 기독교의 위대한 역사관을 가지게 한다. 인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일이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천지를 만드시고” 라는 고백에서 신의 형상으로 지은 받은 인간, 나의 고백은 더욱 중요하다. 인간을 만드신 창조주에 대한 고백이 중요하고, 창조된 창조물로서, 하나님의 인격을 닮아가므로 영광스러운 존재로 만들어 가기 때문에 또 중요하므로 바른 고백을 해야 한다.  

                       (3)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전능하셔서 온 우주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 하나님이심을 내가 믿습니다. 고 고백 한 것이다.

하나님과 아버지 두가지 단어로 결합하여 사용되고 있다.  두단어를 분리하여 고찰함이 중요하다.
■ 하나님
기독교에서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명칭이 크게 두가지로 구분한다. 엘로힘이란 말이며,  다른 하나는 여호와(야훼) 라는 말이다. 엘로힘은 엘의 복수형이다. 가장 강력한 하나님이란 뜻이다. 절대적인 능력을 가진 분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엘로힘 하나님은 자유입장에서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또 사람을 자기 모양대로 만드신 분이시다.
또 한가지 명칭은 여호와(애훼) 라는 말이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로서, 구원의 하나님이시라는 뜻이다. 구원이란? 사람을 하나님 같은 자를 만들어 하나님 같이 영생복락에 이르게 함이 긍극적인 구원이다.
이 세상에 있는 사람이나 신적존재는 모두 시공간에 제한을 받지만  우리가 믿는다고 고백한 하나님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계신 분이시다. 천상 천하에 한분뿐이신 절대적 하나님을 믿음을 고백한다.

■ 아버지
(1)아버지는 삼위일체 구조에서 아버지로서 사용하셨다. 성부로서 성자를 보내고, 성령을 보내신 분이시다. 성부 성자 성령은 본질에 있어서 동등이시다. 아버지라 하셨다고 성자와 성령이 종속되는 것이 아니다. 완전 동등과 완전 합일의 관계에서 존재하시는 분이시다. 사도신경의 구조가 삼위일체론적으로 되어 있는데, 그의 첫 부분이 바로 이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고백이다.
(2)아버지란 말은 하나님과 우리 관계를 가장 친밀한 ,밀접한 사람관계를 나타내는 분이시다. 보통 신이라 하면 두려움의 위치에 두고, 무서움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기독교에서의 하나님 신은 아버지이므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가장 가까운 관계요, 모든 것을 책임진 아버지로서, 가장 자비로운 신 아버지로, 사랑의 대상으로서 아버지로서, 생명을 주는 분으로서의 아버지, 가장 으뜸가는 신임을 나타내는 의미가 있다.
사도신경의 고백이 “하나님 아버지를 믿사오니“ 로 한 것은 신의 성품의 양면성을 고백한 것이다.
하나님으로 고백한 것은 절대창조로서의 신 유일하신 한분 하나님 신, 하나님 외에는 구원이 없는 것을 고백한 것이다.
아버지는 사랑을 나타내고, 생명을 주는 뜻을 나타내고, 유업을 주는 뜻으로 나타내고, 가장 가깝고 의지할 분임을 고백한 것이다.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아버지 됨을 믿는다는 고백이다.
    
二.성자 예수 그리스도(12가지) (1) 예수그리스도의 신분에 대한 고백 4가지

                       (4)  그 외 아들  (요3:16)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성부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 영광스러운 아들의 이름을 얻으셨음을 내가 믿습니다. 고 고백한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는 아들이 아닌 되, 직분적으로 아들, 외 즉 한분뿐인, 아들 일을 하려 오신분, 영광스러운 일을 하려 오셨다. 하나님의 생명전달을 위하여 사명을 띠고 오신 순종이름이요, 사역적인 이름이다.
예수그리스도를 외 아들이라 하신 것은 생산적인(출생적) 이름이 아니다. 사역적인 이름이요, 순종적 이름이요, 생명전달하는 직명이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영생하는 하나님의 생명을 전달받았고, 유업을 얻는 양자의 아들이 된 것이다. 이 뜻으로 고백하셨다.

                          (5) 우리 주  (마16:16)

하나님의 외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는 나의 주인이시며, 왕이시며, 나의 그리스도이심을  내가 믿습니다. 나의 왕, 나의 주인, 나의 통치자이심을 고백 합니다. 고 고백한 것이다.

■ 우리(눅1:1-2)
2천년전에 열두 사도가 고백한 그 신앙고백이 과거 2천년 동안 전세계 교회가 다같이 고백했고, 오늘 우리도 사도들의 신앙고백을 우리의 신앙고백으로 받아 들여서, 우리가 고백을 하고 있다. 그래서 신앙고백이 중요하다.  
성경과 같이 2천년 간 없어지지 않고, 고백으로 사용됨이,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고백을 하는, 모든 사람을 우리라 했습니다. 진리로 동질된 자를 우리라 했고, 개체가 모여 단체가 된 것이다.
우리는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이요
우리는 한 분 예수로 구원을 받은 우리들이요.  
우리는 한분 예수 이름으로 천국가고
우리는 한분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고, 한분으로 사죄 받았으며.
우리는 한 분 예수 이름으로 축복을 받아가므로 중요하고
우리는 한 분 예수로 귀신을 이기고, 예수 한분을 닮아서 영화에 이르므로 우리라 했다.
분명, 우리는 예수 진리로 동질되어 가므로 진리안에서 진리 동질된 자를 우리라 했다.
진리동질이 아니면 우리 아닌 무리요, 남이요, 지옥간다. 예수 동질로 하나된 자를 우리라 했다. 이 고백이 없다면 이 자리에 있어도 지옥 갈 자이다. 예수 인격으로 만들어진, 진리로 하나 된 개체가 모인 단체를 우리라 하였다. 우리는 진리형제로 살아야 하며, 한 고백이 있어야 한다.
■ 주
주란 명칭은 신구약 성경에서 수없이 많이 사용되는 말이다. 구약에서는 주인으로 하나님을 호칭(높이는 뜻) 하여 주(아도나이 yn;doa} ) 라고 불렀다.
그런데 사도신경에 나오는 주라는 것은 보편적으로 쓰인 것이 아니고, 특히 두가지 특수 의미로 사용되었다.
①예수님을 창조주요,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으로 능력과 권한을 가지신 분으로 주라고 고백 한 것이다.
②예수는 죄악에서 구하신 구주로 고백한 것이다. 예수님이 구주 아니면, 순교하기 까지 굳센 믿음생활을 유지 하지 못했을 것이요, 기독교회가 생겨지고, 유지 되지 못 했을 것이다.
사도들이 구주로 고백하셨고, 창조의 능력자임을 고백하므로, 일생 순교의 걸음을 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고백은 대단히 중요하고, 날마다 주로 고백하여 생사가 주이신 예수께 있음을 고백하고 살았다. 생사가 자기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살고 죽고가 예수에게 있음을 고백하여 주(主)라 했다.  

                        (6) 예수  (마1:2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종의 형상인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예수] 라는 이름을 얻으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그리스도의 사명(직임)을 다하시고 지금은 영으로 임재 하시어 임마누엘로 나와 함께 계심을 믿사옵니다. (마1:21, 눅1:31) 고 고백 한 것이다.  

구약의 ‘예호슈아’ 란 단어와 동일어로서, “여호와가 구원 하신다“(수1:1, 슥3:1) 뜻과 같은 헬라어 ‘이에수’ 이다 즉 자기백성을 구원할 자라 뜻이다. (마1:21)
구약에 영으로 계신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취하시고, 사람되어 오신 하나님을 고백한 것이다.  빌2:6-8절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다른 존재가 죄인 구원 못한다. 오직!  죄인을  구원하려 오신 분으로 예수로 고백 한다.  

                       (7)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행5:42)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의 제사장이시며, 나의 선지자시며, 나의 왕이 되사. 나의 죄 문제, 죽음문제, 악령문제와 모든 영육문제를 해결하려 오신 나의 그리스도이심을 내가 믿사옵니다. 고 고백한 것이다.

그리스도는(삼상9:16, 10:1, 삼하19:10, 삼상24:6) 구약에는 메시야(왕상 19:10) 즉 기름 부음 받은 자 뜻이다. 기름부름 받은 자는 왕 제사장 선지자로서 구약에서는 왕(다윗), 제사장(아론) 선지자(이사야) 가 실제 있어서 일을 하셨으나, 신약에 와서는 왕 제사장 선지자를 세우지 않고, 친히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일하셨다.
▪ 예수님은 왕일을 하셨다(마27:11, 눅1:33) 왕으로서 하나님의 완전하고 선한 통치를 인간에게 나타내시고, 왕으로서 인간의 연약함을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간 것이다. 마귀를 꺾고 하늘나라 건설과 천국백성 만드는 작업을 하시는 분이시다.
귀신의 왕국을 파괴하고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여,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고 왕국이 이루지게 하는 사역이다.  
▪ 예수님은 제사장 일 하셨다(막10:45, 히3:1, 4:14, 5:1-15)7:20-21)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속죄의 치유를 인간에게 나타내시고, 인간의 허물을 하나님 앞으로 가져, 가는 사역을 하시는 분이며
▪ 예수님은 선지자 일 하셨다.(요8:14)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구원을 인간에게 완전히 전달하는 의미로 사역하시고, 인간의 거짓을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가는 사역을 하신다.
선지자의 의무는 주로  하나님의 뜻을 백성들에게 계시하여 교훈하고, 권면하고 경계하고, 영광스러운 약속을 하는 것이었다. 선지자는 가르치는 일이 중요한 의무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과 진리를 가르치고 또 그 진리에서 백성들이 이탈 할 때는 책망하며 진노를 공포하고 또한 은혜와 영광의 날이 올 것도 말하며 격려 하는 것도 선지자의 특권이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사오며” 는 왕, 제사장, 선지자, 일하시는  분임을 고백한다.

(2)예수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고백 8가지

      (8)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마태1:18-25)

나의 그리스도 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언약으로 약속하시고, 선지자들의 말씀으로 예언하신대로 성령능력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를 통하여 이 땅위에 인자의 몸으로 탄생 하신 것을 내기 믿사옵니다. 고 고백한 것이다.

▪ 성령으로 잉태하사: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 인간의 차원에 들어 온 방법을 말해 주고 있다. 그리스도가 사람 몸을 입을 때에 전혀 남성의 역할 없이 여자 몸만을 이용해서 나신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해가 안 되는 사건이다. 밑에서 보지 말고, 위에서 보면, 이해가 간다. 하나님의 천지창조와 같다. 성령하나님의 능력으로 된 사실이다.  
▪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마리아 통해 오시고) (마태 1:18-25)
“동정녀” 라고 이사야 7:14절을 인용하여 마1:23절에 그대로 기록했다. 처녀로 번역 안하고 여인으로 번역은 잘못이다. 70인역에 처녀라고 헬라어 “파르데노스“(parqevno" )로 번역하고 있다.
▪ 마리아에게 라는 말은 예수그리스도가 막연하게 하늘에서 떨어져서 와서 지상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몸을 빌려서 오신 것을 가르친다. 마리아 몸을 통한 것은 하나님세계와 인간 세계가 접촉되었고, 마리아 통해 왔기에 존재가 구체성을 띤 것이다.
우리 사람과 같은 모양으로 나신 것은 사람구원이요, 예수화(예수 닮음) 동일화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인 것이다.  처녀 몸을 빌려오신 것을 고백했다.

               (9) 본디오 빌라도 에게 고난을 받으사 (마태27:11-27)

나를 의롭게 하시고, 천국 백성 삼기 위하여 33년 4개월 동안 모든 율법의 일점일획도 남김없이 다 이루시고 [본디오 빌라도] 에게 많은 고난과 재판을 받으셨다. (행4:27, 눅3:1, 딤전6:13)고 고백한 것이다.(대행)

유대 나라는 B. C. 587 년에 바벨론의 느부간네살 왕에 의해서  완전히  폐망 당했다가, B.c. 166년에 마타티아와 그의 아들에 의한 독립운동이 성공하여, 그때부터 B.C. 37년까지 일종의 독립국가로 있었으나  63년부터 37년까지 로마제국에 의해서 여러번 침범을 당하다가, 마침내  헤롯대왕에 의해서 완전히 제국의 한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그후 유대는 A.D. 6년까지 혜롯왕가에 의해서 통치되어오다가, 혜롯의 한 아들인 아르켈라우스(Archelaus)가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축출을 당하자 로마 제국에서는 유대를 시리아 지 방청에 행정청으로 직속시킨 후, 유대지방에는 총독을 두어 이 지역을 다스리게 하였다. 이 때부터 유대는 총독통치하에 있었다.
로마 제국에는 13명의 총독이 있었다. 그 중 본디오 빌라도는 로마 제국의 제 2대 황제인 티베리우스에 의해서 선임되어 10년 동안 유태를 통치했다. 이와같이 빌라도 총독의 이름이 복음서에 기록이 되어 있음은 예수의 생애를 측정하고 그의 십자가 죽음을 알아내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예수 태어 날 때에는 혜롯의 이름이 나오고, 그가 죽었을 때에는 본디오 빌라도 총독의 이름이 나오는 것은 보아 성경은 역사적인 책이요, 예언의 책이요, 하나님의 책이다. 예수의 존재가 틀림없이 역사적인 존재였다는 것이 이것으로 증명되고 본디오 빌라도 총독 때에 일어난 사건임은 틀림이 없다.(참조 마태27:11-27)  
실제로 예수님을 고문하고 조롱하고 십자가에 못박게 한 것은 바리새인, 제사장, 그리고 그들을 따르던 유대인 무리였고, 빌라도는 법적으로 최후 판결만 내렸을 뿐입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개인
적으로 예수님을 구하려고 애를 썼을 지라도, 법적으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사도신경의 주장은 전혀 잘 못됐다 할 수 없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석방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이익을 생각해 유죄판결을 내린 것이다. 무죄하다는 것을 알면서 유죄판결을 내린 것은 정의에 어긋나고 통치자 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다.
사도신경에서 ‘본디오 빌라도’ 의 이름을 거론한 것은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신 것이 하나의 역사적 사실이란 것을 분명히 말해 주기 위해서라 할 수 있다. 예수의 고난은 신화도 비유도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살고 있는 역사안에서, 즉 주후 26-37년에 유대 총독이었던 본디오 빌라도에 의하여 고난당하셨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뿐 아니라 이 일은 아프리카의 어느 오지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그 당시 가장 강력한 나라였던 대 로마제국의 황제를 대신한 본디오 빌라도 밑에 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불행하게도 본디오 빌라도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류를 대표하고, 인간의  죄를 상징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무시하는 인간의 죄를 공적으로 대변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은 인간의 죄로 인해 고통을 받으셨으며 , 그분에게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가하도록 허락한 빌라도는 죄를 지은 우리 모두를 대표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의 고통은 결국 우리를 위한, 우리의 의를 위한, 구원을 위한 고통임을 고백해야 하며, 그럴 때 우리는 사도신경을 제대로 이해하고 고백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10)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마27:32-37 45-50)

나의 허물과 죄, 죄로 온 사망과 질병 온갖 불행을 다 담당하시기 위하여 창에 찔리시고, 채찍에 맞으시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음을 내가 믿습니다. 고 고백한 것이다.  

▪ 십자가에 못 박혀
십자가에 사람을 달아 죽이는 방법은 고대 중동지역과 로마제국에서 많이 사용하던 방법이다. 고대 바벨론 고레스왕 때에, (BC 6세기경)부터 십자가에  달아 죽이기 시작하여 AD3세기까지 처형되었다.  
십자가를 사용하여 사람들을 죽일 때에는 대개 두가지 방법을 사용하였는데, 손발을 십자가에 붙들려 묶고 시간이 오래가므로 죽이는 방법과, 손발을 십자가에다 못으로 박아서 죽이는데 경우에는 숨을 거두는 시간이 비교적 짧다고 한다. 물론 예수님은 손발에 못을 박혀 죽었다.(신21:23)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은 저주에 해당 된다 “나무에 다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
또한 십자가는 부끄러운 것이라고 했다(히12:3)
▪죽으시고
 그런데 로마서 5:8에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 즉 우리가 의인 도 아니고 죄인일 때, 즉 누가 대신해서 죽을 만큼 고상한 존재가 아닌 상태에 있는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셔서 대신 죽게 하셨다는 것이다.
“죽으시고” 했으니, 두말 할 것도 없이 죽음이란 인간의 마지막을 의미한다. 존재의 종결을 의미한다. 또한 사람은 누구나 ’이 길을 걸어갈 수 밖에 없는 절대적인 관문이다. 이것은 운명적 통로이다.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여러가지 수단과 방법을 다 하다가도 마지막에 가서는 다 단념하는 관문이 죽음이다. 이 관문은 죄값으로 온 것이므로 이것만은 꼭 해결하고 가야 한다.  
죄없는 분이 대신 죄벌을 받아 죽어야 죄벌을 면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음은
믿는 자의 죄가 처형된 장소요.
악귀신과 사망이 처형된 장소요,
지옥 영벌이 해결된 장소요.
죽음이 예수께는 수치지만 믿는 우리들에게는 자랑거리요, 저주 거리가 아니라 축복 장소이며, 절망의 상징 아니라 희망의 원천이 된다. 그래서 바울은 십자가 외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내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느니라”(갈6:14)
예수 십자가 죽음은 믿는 자의 죄 문제 해결 되었고. 원죄, 자법죄 과거부터 영원까지 모든 죄를 도말하신 것이다.  
지옥문제 해결되었고, 죄의 운명 팔자 해결되었고,
죄벌로 오는 온갖 불행을 해결해 준 것을 고백 하였으니, 고백 중에 핵심 되는 고백이다.

                    (11) 장사한지 (눅 24:1-2)

예수 그리스도의 확실한 죽음을 온 천하에 선포하며 증거하기 위하여 [아리마태 요셉]의 새 무덤에 장사 되셨다. 고 고백한 것이다.

몇가지 뜻이 있으니, ①인간이 어디까지 가는가? 최후까지 가는 곳이 무덤이다.
②무덤까지 가는 이유는? 죄값이다. 범죄한 인간에게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흙으로 돌아가라 하셨다(창3:19)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형벌의 한 부분이다. 완전한 죽음을 체험하시기 위하여 장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죄수로 죽어서 죄의 형벌을 받아 장사 된 것이다. 장사되어 무덤까지 간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고, 무덤에 장사되는 것도 사람 구원하는 한 과정이다.
③무덤까지 가야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 그래서 무덤까지 갔다. 무덤까지 내려 간 것은 예수님의 지배권이 무덤아래까지 지배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천상만 지배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지하까지 지배권을 가진다는 뜻이다.
④ 음부와 같은 깊은 곳에 내려갔으나,  거기에서 더 강력한 힘으로 도약하셨다. 이 도약의 사건이 부활이다. 육의 사람을 벗기 위하여, 장사하였고, 육을 벗어야 부활할 수 있다. 부활은 죽은 자에게서만 있는 일이니, 예수님의 장사는 부활을 위한 것이다. 부활을 전제한 장사임을 고백하였다.  
  
            (12)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눅24:1-1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에게 새생명과 부활생명을 입혀 주시기 위하여 죽어 장사된지 사흘만에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다시 살아 나셨음을 내가 확실히 믿는다. 고 고백한 것이다.

▪부활은 승리를 증거해 준다. 부활은 하나님의 초자연적 능력역사로, 원수 악령과 죄와 사망의 세력을 이김을 주신 것이다.(고전15:  )
 부활은 믿는 자의 구원을 만들어 주셨다. 성경은 분명히 부활을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서술하며,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롬 10:9)  부활이 없으면 믿는자의 구원도 성립되지 않는다.  
 부활은 천국 들어가는 관문을 열어 주셨다. 예수 부활은 부활의 첫 씨라 하였으니, 그 씨 안에 택자 부활이 다 들어 있는 것이다.(고전 15:20) 예수 부활이 곧 내 부활임을 고백한 것이다.

                     (13) 하늘에 오르사  (행1:6-11)

예수그리스도께서는 내가 영원히 누릴 영광스러운 처소를 예비하시기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셨음을 내가 믿습니다. 승천하신 것을 고백한 것이다.

① 승천은 땅에 오신 일을 다 성취하여, 오신 그곳으로 되돌아가신 것이요, 하나님께서 제사장 사역을     완성하심을 인정하시어 하늘나라 영광 중에 맞아 들이셨다.  
② 그리스도의 승천은 그의 백성이 장래에 있을 승천을 예시함이니, 믿는 자들에게 승천을 약속하시는    증표이다. 미래에는 육적으로 부활 승천 하여 영광중에 영생할 것을 약속하고 있다.
③ 승천은 성령시대 즉 교회시대를 개막하신 것이다. 승천하신 후, 보혜사 성령이 임하시고, 거룩한 영으로 우리 안에 내주 역사 하신다. 구름타고 승천함을 고백하므로, 지금 어디에 계심을 입증하는 고백이다.  

           (14) 전능하신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롬8:31-39)

온 천하 만민에게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증거 되어 하나님의 아들로 택정된 자들이 다 돌아오기까지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보좌에 앉아 계심을 내가 믿습니다. 고 고백 한 것이다.

 우편에 계심은 우주만물 지배권을 가진 것을 보임이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심을 상징하며    온 우주를 통치하심을 보임이다.
 구원받은 자의 수가 차기까지 역사 하실 것을 보임이다. 승천하여 있는 기간에 무임으로 계심이 아니고, 사역을 계속하고 계시니, 승천 제위하시면서, 성령을 통하여 왕사역과 제사장사역과 선지사역을 하셔서, 사람을 구원하는 일을 오늘도 계속 하심을 고백하고 있다.  

         (15)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려 오시리라 (마25:31-40)

공심판과 사심판을 하실 영광스러운 주님께서, 오심을 고백합니다, 이러하므로 영광스러운 주님께서 내가 은밀히 행한 모든 선 악간에 행위를 심판하시기 위하여,  천군 천사와 함께 하나님 큰 나팔 소리를 울리면서 구름 타고 영광 중에 다시 오실 것을 내가 확실히 믿습니다.  고 고백한 것이다.
 
주님의 심판은 꼭 있다.
주님의 심판이 없다면, 성경은 전부가 거짓이며
주님이 심판은 진실한 심판이라고 했으며(계 19:2)
주님의 심판은 산자와 죽은 자의 심판이라 하였으니, 이미 죽은자와 주님재림시에 살아서 만나는 자 까지 심판하실 분을 고백한다. 죽은 행실을 한 자를 심판하시고, 산 행동한자를  심판하시고, 산자는 내가 산일 한 것을 말하고, 죽은자는 내가 죽은 짓 한 것을 말하니, 행함 없는 믿음은 다 죽은 행실이다.
주님의 심판은 선 악간에 심판한다고 고후5:10 하셨다. 영원한 상급 심판이다.
주님의 심판은 과거 심판, 현재심판 미래 심판으로 진행 하고 있다. 안 믿는 자는 과거 심판받아 별서  정죄 받은 것이다.(요3:18) 현재심판은 징계요, 미래 심판은 백보좌 심판이다(계19:) 심판하시는 주님임을 고백한다.      

三. 성령 하나님(6가지)
                      (16)  성령을 믿사오며  (요16:5-15)

성령님께서 내 속에 임재 하셔서 나를 바른 길로 인도 하시고, 감동 감화 하사 하나님께만 경배 하도록 역사 하고 계심을 내가 믿사 옵니다. 고 고백 한 것이다.

 성령은 어떤 분이신가? 성부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셨고, 또 성자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셨고,    성령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했다. 즉 성령은 하나님이시다.
 성령은 어디에서 왔을까?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왔다. 성부 성자 성령은 동등이시다.
 성령은 무엇을 하는 분이신가?  이 세분은 각자가 우선적으로 그리고 솔선해서 하는 일이 있다. 성부는 우주창조와 역사주관을, 성자는 속죄사역을, 그리고 성령은 은총공급(은총 은혜 은사)을 주로 한다고 할 수 있다.
성부사역에 성자와 성령이 내주 사역하시고, 성자사역에 성부와 성령이 내주 사역하시고, 성령사역에 성부와 성자가 내주사역 하신다.
 성령은 진리안으로 인도하시고, 회개케 하시고, 진리 생각나게 하시고, 강하게 믿게 은사를 주시고, 사람을 구원케 하시는 주역으로 역사하신다. 성령역사에 잡혀 사역해야 함을 고백합니까?

                      (17) 거룩한 공회와

성령님은 교회가 예수그리스도를 중심한 성도들의 거룩한 공동체임을 믿게 하시는 분이심을 내가 믿습니다. 고 고백 한 것이다.

 공회는 교회를 말한다. 교회는 거룩한 공동체다. 교회는 예수님이 세운 교회이다. 교회의 핵심 내용은 성경진리이다. 교회를 움직이는 역사는 성령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거룩한 교회이다. 속화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거룩이란? 진리그대로, 성경그대로, 성도 그대로, 불순물이 썪이지 아니한, 순수한 그대로를 거룩이라 한다. 금덩어리는 진흙에 있어도 금덩어리 그대로 있다. 금으로서 거룩이라 할수 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사람접촉, 세상문화 접촉 하여도 속화 되지 않았다. 거룩한 진리 모습 그대로 있었다. 교회도 타락하지 말고, 더럽히지 말고, 순수한 진리 교회로 있어야 한다. 이런 교회를 만들어 가야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왕국이 건설 될 때까지 존재 할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이다. 머리는 예수님이시며, 몸과 지체는 각 성도 들이다. 머리되신 예수 지도로 진리 운동하는, 생명운동하는, 구원운동하는 각 지체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지상 선교(전도)의 본부이다. 다. 더. 두. 데가 일어나야 한다. 그리스도 왕국이 세워질 때까지 선교, 전도 심방의 신발을 신고 뛰어야 한다. 이 땅위에 거룩한 공회를 세우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18)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고전12:12-20)

성령님은 예수그리스도가 나의 머리가 되시며,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한 형제, 한지체가 된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고, 서로 용서하고, 서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거룩한 교제를 하도록 역사하시는 분이심을 내가 믿사옵니다. 고 고백 한 것이다.

이 지상에 여러 가지 종류의 강력한 인간 모임이 많이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성도들의 교제나 모임이 중요하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이 교회에서 모여서 교제를 가지는 것은, 가장 중요한 모임이다.
본래 교회란 성도들이 모여서 가지는 교제는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너무 중요하여 바울은 ‘축도문’ 에서까지도 삽입하여 “성령교통(교제) 하심이 함께 할지어다” 라고 했다.  우리 성도들은 한 몸에 붙은 지체이다. 머리는 예수요, 몸은 교회 전체요, 각자는 지체이다. 지체가 서로 유익을 주는 것이 교통(교제)이다. 신앙생활은 혼자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사람은 교회 나가지 싫어하고, 성도의 교제도 피하여, 기도원이나 산속으로 혼자 다니는 것은 크게 잘못 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근본적인 존재 양식이 공동체에 삶인 것이다.  신자 간에 교제는 신앙성장에 절대적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이도, 남자와 여자의 차이도, 자유자나 노예의 차이도 없이 모두가 하나이다. 빌레몬서에 보면 오네시모라는 노예를 위해서 바울이 권면한 말이 있다. 그는 당시 짐승과 같이 취급했던 노예를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로 받아들이라고 명한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께서 헐어 버리신 인간과 인간 사이의 담을 허는 것이다. 이에 기초해서 어거스틴(Augustinus)을 비롯한 신학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당시에는 감히 상상도 못할 ‘노예 해방’ 을 주장할 수 있었다,
교회의 구성원들은 모여서 예배만 드리고 흩어져서는 안 된다. 모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석해서, 서로를 위하며 서로에게 양보하는 공동체적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어떤 분들은 지나치게 신사적이어서 예배시간에 정확히 맞추어 들어오고 끝나자마자 곧 떠남으로 다른 사람들을 귀찮게 하지 않으려 한다.
우리들은 남의 일에 간섭하는 것보다 자기 일에만 충실한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그렇게 지나치게 신사적이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우리가 하나라는 의식과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예배 마친 후 바로 가지 말고 옆에 있는 분들과 인사를 나누시기 바란다. 그래야 다음에라도 다른 곳에서 만나면 ‘저분이 우리 교회에 나오는 000씨로구냐’ 하고 기억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때 조심할 것은 사회의 신분을 교회에 그대로 가져오지 말라는 것 이다. 사회의 지위와 신분으로 교회에서 존경을 받으려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교회의 문턱을 넘는 순간 모두가 하나님 앞에 통일한 시민이요 형제요 자매인 것이다.
그리고 원칙적으로는 교회에서 서로 유무상통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지혜로운 투자는 ‘도울 수 있을 때 돕는 것’ 이다. 재물이 있을 때 바로 써야지 기회를 놓치면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다. 그런데 남을 도와줄 때 조심할 것은 ‘행여 나의 도움이 도움 받는 형제 자매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다. 우리는 도와 줄 때도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으로 도와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 연구할 필요가 있다.
교회를 통해서 구제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 도록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지 연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려 주신 재물을 아끼고 올바르게 사용히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내가 쓰지 않는 물건 가운데 다른 사람에게 아주 요긴 한 것을 내어주는 것은 사랑일 뿐 아니라 물자를 아끼는 미덕이다. 이 같이 서로 도움으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인 것을 느낄 수 있다.
나보다 남음 먼저 위한 생활이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은 그것이 성경의 중요한 가르침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고백한대로 서로 교통함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19)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롬3:9-20)

성령님은 나에게 회개의 영을 부어 주시고, 나를 감동케 하사, 죄를 자복하게 하시고, 남의 허물을 용서하게 하시며, 서로 죄를 고백하므로, 그리스도의 피로 내가 죄사함을 받게 된 것을 깨닫게 하시는 분이심을 내가 믿사옵니다. 고 고백 한 것이다.

사람은 죄 용서를 받지 않고서는 사람은 살수 없을까? 성경은 살수 없다고 한다, 물론 육체적인 생명이나 심장과 기능이 정지되기까지는 지속 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다운 사람의 생활은 할 수 없다고 성경은 말한다. 그리고 죄값으로 불구덩이 던짐이 된다. 그래서 성경은 죄문제를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고 단언한다.
그래서 사도신경에서는 이 죄문제에 언급하면서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을 믿는다고 고백한다. 왜냐하면 그는 사랑이시오,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시오, 사죄권을 가지신 능력자이시며, 사람을 살리기를 원하시는 구원의 하나님이시다.
죄사함의 방법에 대하여 성경교훈과 신학적 견해를 간추려 본다면,,,
①죄는 하나님과 인간관계에 문제이기 때문에 사람의 행동으로서는 해결이 안된다.  인간이 훌륭한 행동을 한다, 미덕을 행한다. 사람이 좋게 보이는 일을 행한다 해도, 신에게 까지는 도달하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이어줄 신인결합체인 예수그리스도가 필요하다.
②산같이 큰 죄를 하나님이 용서해 주시겠지, 이렇게 느끼기 쉬우나, 사실은 하나님은 공의 하나님이시므로, 공의와 거룩에 대립되는 죄를 아무런 형벌이 없이 용서해 주시지 않는다. 그렇게 한다면 하나님의 세계가 무너져버린다. 죄는 공의와 거룩에 대립되므로ㅡ 반드시 처벌을 받아야 한다.
③이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택하신 유일 방법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시고, 대속의 제물로 삼은 것이다. 막10:45절“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
요한1:29절에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했다. 요한3:15 절에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한다. 뿌리 깊은 죄를 없이 하려고 신이 사람 되어 왔고, 대신 죄벌을 받아 죽었다. 믿는 자는 그 효과를 얻게 된다.
그런데 문제를 제기하는 자는 우리와 2천년 전 사건 예수와 시간적 거리를 두고 있는데 효과가 있을 까? 시간을 초월하여 역사하는 성령은 오늘 그리스도와 하나 되께 하신다. 믿게 하신다. 효과 입게 하신다.
요한일서 1: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예수 믿은 후에는 죄악을 자백해야 한다.
죄의 고백에는 지, 정, 의 의 고백을 해야한다. 지적으로 무슨 죄를 지적하고 인정하고, 정적으로는 슬피 울고 가슴 치며 통회 하고, 한번 기회를 놓이지 않도록 가슴 아파해야 하고, 의지적으로 다시는 같은 죄를 짓지 않고 끊어 버린다.
또 하나님께 사죄 받고, 사람사이에 서로 죄악을 고백해야하고 용서를 받아야 한다.        

                   (20)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살전4:13-18)

성령님은 주님이 영광스러운 몸으로 다시 오시는 그날 나도 미모의 부활체, 능력의 부활체, 영광의 부활체로 다시 살아나기 위하여 내 속에서 역사하고 계심을 나는 확실히 믿사옵니다. 고 고백한 것이다.

부활에 대하여 몇가지를 생각하여 본다면,,,
(1)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산다는 것은 초자연적인 사건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세상의 모든 물체와 존재는 종말이 온다. 존재 종말이 오면 그 존재는  죽음으로 영원히 소멸된다. 그러나 사람의 영혼은 부활하여 영생 하는 존재이다.
(2)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인간의 실패를 넘어서, 일어난 초자연적인 사건이 부활 사건이다. 예수 부활 권능으로 우리가 중생으로 죽은 영이 살고, 기능이 살고, 육체가 사는 부뢀이 된다.
(3)부활체의 모습이 ꊉ 미모부활체는 예수 닮은 모습체요 ꊊ능력부활체는 선행하므로 입은 모습체요 ꊋ영광부활체는 전도, 선교로 얻는 부활체이다. 이렇게 부활한 모습은 천국을 100% 누리는 것이다,

                (21)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계21:1-8)

성령님은 나에게 내세의 소망을 주시며, 이후에 천국에 올라가 나의 실력대로 영원히 살게 되도록 내 속에서 역사하고 계시는 분이심을 내가 확실히 믿사옵니다. 고 고백한 것이다.

사도신경 제일 마지막 조항에 이르러 사도들은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  부활에는 선이나 악인 다 같이 부활하고, 신자들은 장차 부활하여 하늘나라 천국가서 영원불변한 축복의 상태에서 계속 산다. 이 영생에 대하여 성경은 무수히 증거하고 있다(마13:43, 25:34, 롬2:7, 10, 고전15:49, 빌3:21, 딤후4:8,  계21:4, 22:3-4)
오늘도 하나님이 계신 영원한 나라 천국을  바라보고 교회 일을 뜨겁게 하자! 사도신경의 마지막 고백“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는 죽음과 고통이라는 한계를 가진 인간에게 마지막 위로를 주는 고백이다. 즉 이 믿음 때문에 우리는 온갖 고난 가운데서도 위로와 소망을 가지고,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진실로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 하나님에 대한 기본신앙 (읽어두기)

(1) 하나님은 실존자(實存者)이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존재적 실유(實有)에 대하여 가 , 부를 물을 필요가 없으며 스스로 영원히 계신 분이십니다. 추상이나 상상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이런 사건을 보니 신이 있어야 되겠다는 식이 아니며, 철학자와 같이 인간세계에 이 사건을 보니 꼭 있어야겠다고 가상, 추상, 조작하는 신이 아니고 과학자처럼 실험해보고 증명이 되면 믿는 그런 것도 아니고, 과학이나 철학적이 아닌 영원토록 스스로 계신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시14:1절에 ”어리석은 자는 그 마옴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 하셨으나 인간이 스스로 계신 하나님을 부정하고 거절한다고 하나님이 거절당하고, 부정당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고, 하나님은 자존하시며, 영원히 살아 계셔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상급 주시어 영원히 천국에서 살게 하시는 실존자(實存者)이십니다.(히11:6, 롬11: 19-20,시19:1 요 1:1 마6:9-)

(2)하나님은 비물질적 존재( 非物質的 存在)이다.

하나님의 존재는 고체나 액체나 기체가 아니시고, 비물질적 존재이시므로 물질적 인간 눈으로 하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안 보인다고 하면서, 보여 달라 합니다.
물질적인 눈으로 볼 수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수가 여인도 하나님에 대하여 물을 때에 요4:24절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할지니라“ 하셨으며, 옛날에는 눈에 보이는 것만 긍정적으로 받아 드렸으나, 과학시대에는 눈에 안보이는 것을 긍정하고, 사랑, 공기,행복이 있지만 눈으로 볼 수없고 손으로 잡을 수 없으나 있는 것을 알고, 몸에 체험하고 사는 것같이, 하나님은 비물질적 신이므로 인간 능력을 초월해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체험적으로 알고 믿고 있습니다.  비물질적 존재자이신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을 통해 자신을 믿게 하셨고(시19:1-4, 롬1:20) 사람에게 선악을 구별하는 양심이 있고(벧전3:9) 사람이 위급할 때 신을 찾는 본성이 있는 종교적 풍물이므로 사람의 양심을 통해 자신을 믿게 하셨고,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을  중거 하시므로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요8:42)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요14: )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시고(눅23:46) 눈으로 보고 믿지 말고 증거를 보고 믿으라 하셨으니, 비물질적 존재를 물질에서 찾는 어리석은자 되지 맙시다.

(3)무형체의 존재(無形體 存在)이시다

어떤 고정된 형체가 없다. 창1:26-절이하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하섰다 한 말은 인척성올 두고 하신 말씀이요, 육모를 두고한 말씀이 아니시다.
또 유대적인 하나님이 아니며, 백인 혹인 황인 형체로 착각하면 안 된다. 하나님은 유형적인 형체을 가진 존재가 아니고, 무형적 인격 존재차이시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아버지를 보여 달라 할 떼 곧·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다고 하셨다(요14:7) 도성인신하신 예수님과· 같다는 말이 아 니고, 하나님은 무 형체 존재이심을 알려 주시는 말씀이십니다.

(4)비 시공간적 존재(非 時空間的 存在)이시다

시간과 공간에 제한을 받지 아니한다는 말이니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11번 나타나신 것 갈이, 잠겨진 문을 통과하여 제자들에게 나타내신 것 칼이, 공간에 영향 제한을 안받고, 시간에 장애받지 아니 하신 것과 같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미국에 있는 자나 한국에 있는 자나 쏘련에 있는자나 통시에 역사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5)영원 자존적 존재자(永遠 自存的 存在者)이시다

무엇에 유출이나 상조물이나, 출생이 아니고, 어디서 생겨짐도 아니다. 누가 생겨지게 함도 아니고, 시간과 장관 없이, 태초(시작)와 상관없이, 영원히 스스로 존재하신다(출3:14) 존재 위치를 자신에게 둔며, 근원이냐 원인이나 협력 없이, 스스로 계신분이요,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히 계신 자이십니다.

(6)생존자(生存홈)이시다

하나님은 무생명체(無生命體)로 그냥 하나의 존재하심이 아니고 하나님 자체적으로 능력적으로 근원적으로 생명자로 생존 하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세제는 생명세계요, 빛의 세계요, 사랑의 세계요, 의에 세계로서 날마다 날마다 끝없이 새로워지는 세계입니다(계22: 1-6)

(7)계시된 존재자(啓示된 存在者)이시다.

예수님과 진리와 영감으로 나타내지 아니 하섰다면, 영원히 숨겨진 존재자였을 것이나, 예수님과 진리, 영감으로 스스로 존재하신 그 분을 나타내시므로 그분이 어떤 분인가를 알게 되고, 믿게 되고,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성경 계시로(계1:1-, 욥11:7-11)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나타냈습니다(시145:16-17) 도성인신하신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소원과 목적성을 다 교시하셨고, 성경을 통하여, 오늘도 하나님의 소원성과 목적성올 알려주시고, 저기에 맞추어 살게 하십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카이로스신학연구원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합동총회갈릴리신학연구원 | 고유번호. 106-82-61752 | T. | F.
Copyright ⓒ http://kairosts.net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