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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 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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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iros 작성일18-08-24 15:44 조회2,3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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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 신론 



                             신 론(神論)
 
목 차 (目次)
 
제 1 장 하나님의 존재(存在)-------------------------------------1
 
一.조직신학에 있어서 하나님에 관한 교리의 위치/1
二.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성경적 증명/2
三.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부정/2
   1. 무신론
   2. 그릇된 신관들
   3. 현대의 그릇된 개념들
四.하나님의 실존에 대한 바른 개념들/6
   1. 하나님은 실존자이시다
   2. 하나님은 비물질적 존재이시다
   3. 무형체의 존재이시다
   4. 비 시공간적 존재이시다
   5. 영원 자존적 존재자이시다
   6. 생존자이시다
   7. 계시된 존재자이시다
   8. 내재적 존재자 초월자이시다
五.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합리적 증명/9
   1. 실체론적 논증
   2. 우주론적 논증
   3. 목적론적 논증
   4. 도덕적 논증
   5. 평가
六.하나님에 관한 지식/13
   1. 하나님은 불가완해 하나 알 수 있다
   2. 하나님에 관한 모든 지식의 선행조건인 자기계시

제 2 장  하나님의 명칭들---------------------------------------17

一.  하나님의 이름들의 개관/17
二. 구약에서의 하나님의 이름들/18
   1. 엘
   2. 엘로힘
   3. 예흐와
   4. 예흐와의 복수명사들
     ①예흐와 이례
     ②예흐와 로페카
     ③예흐와 닛시
     ④예흐와 살롬
     ⑤예흐와 츠바오트
     ⑥예흐와 메카데쉬켐
     ⑦예흐와 로이
     ⑧예흐와 삼마
     ⑨예흐와 에일론
     ⑩예흐와 오세누
   5.아도나이

三. 신약에서의 하나님의 이름들/27
    1. 데오스
    2. 파테르
    3. 큐리오스
    4. 데스포테스(주재=상전)
    5. 이예수 크리스투
    6. 휘오스(아들)        
    7. 모고게네스(독생자)
    8. 메시테스(중보자)
    9. 크리스도(메시야)
    10. 로고스

제 3 장 하나님의 본체(本體)와 속성(屬性)들---------------------33
 一.본체란?/33
 二.속성이란?/33
 三.속성들의 분류/34
 1. 하나님의 비공유성의 속성들
   1.자존성
   2.불변성
   3.완전성(영원성)
   4.유일성(단일성)
 2.하나님의 공유성 속성들
   1. 지능성
     ①지혜성
     ②지식성
   2. 도덕성
     ①선
     ②사랑
     ③거룩
     ④진실
   3. 능력성    
     ①의
     ②주권(권세)

제 4 장 하나님의 삼위일체(三位一體)----------------------------47
 
一.서론/47
二.본체와 위/47
三.삼위일체 교리가 가르치는 교훈들/48
四.삼위일체 교리의 성경적 근거/51
    (1)구약에서
    (2)신약에서
五.삼위일체의 교리의 역사/53
六.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이설들/62

제 5 장 하나님의 작정(作定)------------------------------------64

一.하나님의 작정교리/64
二.하나님의 작정에 대한 성경적 명칭들/65
三..하나님의 작정에 대한 정의/66
四.작정의 근거/66
五.하나님의 작정의 특성들/68
六.하나님 작정의 범위들/70
七.작정의 시행/73
八.작정의 목적/74
九.작정과 관련된 문제들/74

제 6 장 하나님의 예정(豫定)------------------------------------77

一.교회사에 나타난 예정교리/77
二.예정에 대한 성경적 용어/79
三..예정 조성자와 대상/79
四.예정의 주요 부분들/81
五.전택설과 후택설/84
六.다른 교파들의 예정관/85

제 7장 하나님의 창조(創造)-------------------------------------87

一.교회사에 나타난 창조교리/87
二.성경에서 창조교리/88
三.창조의 뜻(개념)/89
四.창조는 삼위하나님의 작품/91
五.세계 기원에 관한 다양한 이론들/94
六.영적 세계의 창조(천사)/95
     (1)교회사에 나타난 천사의 교리
     (2)천사의 존재
     (3)천사의 성질
     (4)천사의 수호와 조직
     (5)천사의 봉사
     (6)악한 천사들
七.물질 세계의 창조/102
     (1)창조에 관한 보도의 기원 개관
     (2)창조에 관한 성경적 보도(세목)
     (3)창세기 제 2장의 설화
     (4)창조설화에 여러 가지 해석
제 8 장 하나님의 보존(保存)과 섭리(攝理)----------------------108

一.섭리개관/108
二.보전의 개관/111
    
제 9 장 하나님의 이적(異蹟)-----------------------------------114
      
一.이적의 정의/114
二.이적의 가능성/114
三.이적의 목적/114
四.성경의 여러 가지 대이적기/115
五.현대의 이적/115
    
                                                                                            
                      





























  
                         제  1 장
 
 하나님의  존재
  (The Existence of God)

 하나님(לꔟ 엘)은 실존자(實存者)이시다.
성경은 그 첫 머리에 하나님의 존재를 전제(前提 presupposition)하였다.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라고 선언 한 뒤에 계속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의당한 것으로 전제하고 전진하였다(창1:3-4)
하나님은 존재하신다. 하나님의 존재(存在)의 신관념(神觀念)은 기독교 신앙의 대 전제이다. 히11:6의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존재를 가장 올바르게, 그리고 가장 분명하게 표현한 말씀이다.
그러면 영원하신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영원하고 자존하신 하나님께서 존재하는 사실을, 특별계시인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증거 하셨고, 특별계시 책인 성경에 계시(啓示)하였다. 초자연적 계시로만 알게 된다.
인간 누구도 하나님의 존재를 바로 인식하기는 불가능이다. 왜냐? 완전 타락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완전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존재를 바로 깨닫지를 못한다.
실존자(實存者)이신 하나님은 어떤 신이며, 어떤 구원역사를 행하는가를 초자연적 계시인 성경으로 알게 된다.

一. 조식신학에 있어서 하나님에 대한 교리의 위치

 조직신학 혹은 교의학(敎義學)에 있어서는 일반적으로 신론(神論)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19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조직신학에서 신론으로 시작하는 것이
보통의 관례였으나 슐하이어막허의 감화로 변동이 생겨 인론(人論)으로 시작하였다.
그는 하나님 말씀 대신에 사람의 종교적 의식을 신학의 원천으로 채용하여 성경을 하나님의 권위적 계시로 믿는 신앙을 불신임하고, 사람 자신의 감정이나 이성적 이해에 기초한 인간적 통찰을 종교사상의 기준으로 하였다.
칼 발트도 그의 조직신학에서 창조주로서의 하나님, 구속자(救贖者)이신 하나님, 성결자로서의 하나님의 순서로 하나님으로부터 논의를 하였으나, 실은 인간을 위주 하여 인간을 그의 신학의 주체로 하였다.
그는 성경을 인간이 모아둔 서적으로 생각하였으니 그의 신학은 반 기독적이며 또 무신론적(無神論的)이다.

二.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성격적 증명(證明)

우리는 하나님이 존재하심을 신앙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 신앙은 맹목적이 아니라, 성경증거에 기초한 것이다.
그 증거는 근본적으로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특별계시에서 발견된다. 성경에 “나는 스스로 있는 자” 라고 하나님 자신이 말씀하셨고, 성경은 그의 존재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가정적이요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무슨 구체적 변론의 형식으로 증명하지 않는다. 물론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논리적 변론의 형식에 가까운 구절들이 몇 군데에 발견되고 있다(히11:6, 롬1:19-20, 시19:1-29:9-10, 사40:12-13 롬10:17- 18, 행14:17) 그러나 이상의 구절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할 목적으로 구체적으로 변론을 한 것은 아니다.
성경은 첫머리에 벌써 하나님의 존재를 긍정하고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성경이 이같이 하나님의 존재를 긍정하고 그것의 이론적 증명에 힘쓰지 않는 것은 그 진리에 의문의 여지가 없음을 확인하여 주는 것으로 참으로 최선의 증명인 것이다.

三.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부정(否定)

1. 무신론(無神論)

무신론자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철저히 부정하는 특별한 논법을 제시하지 못하면서도 부정한다.
이 무신론에는 실천적 무신론자들(일반적 불신자들인데 하나님의 관념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그것을 억압해 버리고 하나님 없는 생활을 하는 자들과 (시10:47, 14:1, 엡2:12) 이론적 무신론자들(더 지성적인 사람들로서 하나님이 없다고 단언하여 연구하여 합리적 변론에 의해 정당화시키는 자들)로 구별된다.
그런데 이런 무신론자들은 현시대의 유물론과 가깝다. 유물론은 모든 실재의 일체를 물질적으로 해석하고, 보이는 현상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하여 물질의 배후에 정신의 존재를 이률적으로 부정함으로써 인생의 마음의 존재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한다.
칼 맑스(K. Marx)는 정신이 물질의 지배를 받으니 물질이 제일이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인격적 하나님은 있을 수 없고 추상적일 뿐이라고 하였다. 금일 신신학자들도 이 유물론에 속해 있다.

2. 하나님을 부정하는 그릇된 신관들

① 다신론(多神論)

다신론의 신관은 하나님은 유한하다는 개념을 가지며 동시에 인간이 신 이라고 한다. 그런데 현대 자유주의자들은 성경의 유일신관이 이 다신론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유일신관은 하나님의 계시에서 나왔다.

② 범신론(汎神論)

우리는 하나님은 항상 초월적인 동시 또한 내재적 힘을 믿고 주장한다. 그러나 범신론은 정신과 물질을 혼합시켜 하나님은 비인격적임을 주장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요. 모든 것이 하나님이라고 하며 그리고 하나님은 세계 안에, 어느 곳에서 언제나 계시지만, 세계 밖에는 계시지 않는다고 한다.

③ 자유주의자들의 신관(神觀)

이들의 신관은 유물론적이며 인본주의적이다. 하나님은 사회의 내재적 정신이라고 하여 하나님을 사회질서와 동일시하고 있다.
미국의 자유주의 신학자 폴 틸릭(P. TiIBieh)은 “하나님은 인간사회의 영적 손님으로 인간성을 지속시키고 풍성하게 하여 주는 인간사회의 품질이다”라고 하였다. 이 같은 인본주의 신관은 칼 막스의 유물론이다.

④ 중립주의자들의 신관(신복음주의)

중립주의자들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하는 단체와 “하나님 의 말씀이 아니다” 라고 하는 단체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3.참 하나님에 대한 부정을 함의(含意)하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현    대의 그릇된 개념들

오늘날 하나님에 대한 몇 가지 그릇된 개념들이 유행하고 있는 데, 그것들은 하나님의 유일신적(唯一神的) 인 개념에 대한 부정을 함의하고 있다.
이 그릇된 개념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에 대해 약술함으로써 이러한 개념을 이해 하고자 한다.

① 내재적(內在的)이며 비인격적(非人格的)인 하나님

유일신론은 항상 초월적인 동시에 내재적인 하나님을 믿어왔다. 자연신론(Deism)은 하나님을 세계로부터 격리시켰으며 또한 그의 내재성을 희생하고 그의 초월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범신론(Pantheism)의 영향을 받아 여론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범신론은 하나님과 세계를 동일시하였으며 신적 실유가 그의 피조물과 구별되고 그것보다 무한히 높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였다.
슐라이어막허(Schleiermacher)를 통하여 하나님을 세계와 연관시키는 경향이 신학에서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그는 초월적인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였으며, 단지 인간적인 경험에 의해 알려질 수 있으며, 자신을 기독자의 의식 속에 절대원인(절대의존의 감정이 이에 해당한다)으로 나타내시는 하나님만을 인식하고 있다.
이 견해에 의하면 우리가 하나님에게 돌리는 속성들은 단지 이러한 의존감의 다양한 형태들, 즉 어떤 유사한 실재가 없는 주관적 관념들의
상징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에 대한 그의 초기와 후기의 표현들은 서로 다르게 보여지며 슐라이어막허의 해석자들은 그의 진술들이 조화를 이루어야할 사항에서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부룬너(Brunner)가 슐라이어막허에 대하여 말한바.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명칭은 사용되지만 ‘우주가 하나님을 대신하고 있다’는 것은 정확히 옳은 말일 것이다.
그는 종종 하나님을 “우주”  또는 “세계전체”라고 부르고 있으며, 하나님의 인격성에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모순되게도 그는 마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한다.
하나님을 세계와 연관시키는 슐라이어막허의 이러한 견해들은 지나간 세기(世紀)와 신학을 대부분 지배하였다.

② 유한적(有限的)이며 인격적(人格的)인 하나님

유한적인 신(神)이나 신들에 관한 개념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다신론이나 단일신론과 같이 오래된 것이다. 그 개념은 다원론과 일치하지만 철학적인 일원론이나 신학적인 일신론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유일신론은 언제나 하나님을 무한한 완전성의 절대인격적 실유로 간주하여 왔다.
일원론적인 철학이 풍미하였던 19세기 동안에 신학의 하나님을 철학의 절대자와 동일시하는 것이 상례(常例)로 되어 있었으나 세기말이 되면서 하나님의 칭호로서의 “절대자”라는 용어는 점점 인기를 잃게 되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그 용어가 불가지적이요 범신론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요, 또 하나는 철학에서 “절대자”의 개념에 대한 반대와 신학에서 모든 형이상학을 배척하려고 한 결과 때문이었다.
브레돌리(Bradley)는 기독교의 하나님을 절대자의 한 부분으로 보았고 제임스는 무한한 하나님에 대한 관념보다는 인간의 경험과 더 잘 어울리는 하나님에 관한 개념을 역설하였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자존성, 무한성, 불변성등과 같은 형이상학적 속성들을 제거하고, 도덕적 속성들을 최고로 만들고 있다.

③ 단순한 추상적 관념의 인격화 (Personification)이신 하나님

현대 자유주의 신학에서는 “하나님” 이라는 이름을 어떤 우주적 과정,
어떤 보편적 의지나 능력, 또는 어떤 고상하고 광범위한 이상(理想)을 나타내는 단순한 상징으로 간주하는 것이 유행이 되고 말았다.
하나님에 대한 유일실론적 견해를 거절하는 자들 중 대부분이 하나님을 믿노라고 여전히 공언하지만, 그 하나님은 그들 자신의 상상에서 나온 하나님에 불과하다.
쇄일러 마류스(Shailer Mathews)에 의하면, 하나님이 어떤 특별한 때에 취하시는 형상은 그 날(day)의 사고 방식에 달려있다고 한다.
만일 전쟁이 있기 전에 지배 방식이 절대복종을 강요하는 독재적인 군주의 방식이었다면, 지금은 그의 모든 백성에게 열심히 봉사하는 민주주의적 통치자의 방식이 되는 것이다.
콤트(Comte)의 시대 이래로 인간성의 사회질서를 하나의 전체로서 인격화시키고 이 인격화된 것을 숭배하는 경향이 있었다. 소위 사회개선론자(社會改善論者)들이나 사회주의 신학자들은 여하간에 하나님을 사회질서와 동일시하려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새로운 심리학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관념이 사람의 마음의 산물이며 그 마음은 그 초기에 그 경험들을 개념화하고 준인격(準人格)으로 표현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이와같이 정의된 하나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이 아니며 또한 사람의 마음의 깊은 요구를 만족시켜주지 못한다는 사실은 두말 할 여지가 없다.

四. 하나님 실존에 대한 바른 개념들(槪念들)

본서의 목적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자들 앞에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 함이 아니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 위에서 실존자이신 하나님
이 어떤분이시며 우리에 대하여 어떤관계를 가지신 분이냐에 대한 바른 진리지식을 터득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신앙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사역이 어떠하며,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성과 목적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진리를 바로 깨달아야 하겠다.
우리가 대하는 상대방 사람이 도적놈인지 상놈인지 사기꾼인지 잘 모르면 믿을 수도 의지할 수도 없을 것이며, 두렵고 떨림으로 멀리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기본신앙이 발라야 하겠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삼위일체신으로 영원 자존자로 계시며, 인간구원을 총책임 지시고 진행 성취시키시는 분이시다.


1. 하나님은 실존자(實存者)이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존재적 실유(實有)에 대하여 가, 부를 물을 필요가 없으며 스스로 영원히 계신 분이다. 추상이나 상상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이런 사건을 보니 신이 있어야 되겠다는 식이 아니며, 철학자와 같이 인간세계에 이 사건을 보니 꼭 있어야겠다고 가상, 추상, 조작하는 신이 아니고, 과학자처럼 실험해보고 증명이 되면 믿는 그런 것도 아니고, 과학이나 철학적이 아닌 영원토록 스스로 계신 분이다.
시14:1절에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 하셨으니 인간이 스스로 계신 하나님을 부정하고 거절한다고 하나님이 거절당하고 부정당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고 하나님은 자존하시며 영원히 살아 계셔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상급 주시어 영원히 천국에서 살게 하시는 실존자(實存者)이시다. (히11:6, 롬11:19-20, 시19:1 요1:1 마6:9-)

2. 하나님은 비물질적 존재(非物質的 存在)이다

하나님의 존재는 고체나 액체나 기체가 아니시고, 비물질적 존재이시므로 물질적 인간 눈으로 하나님을 볼 수가 없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안 보인다고 하면서 보여 달라 한다.
물질적인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수가 여인도 하나님에 대하여 물을 때에 요4:24절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
정으로 예배할지니라 하셨으며, 옛날에는 눈에 보이는 것만 긍적적으로 받아 드렸으나 과학시대에는 눈에 안 보이는 것을 긍정하고, 사랑, 공기, 행복이 있지만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잡을 수 없으나 있는 것을 알고 몸에 체험하고 사는 것같이 하나님은 비물질적 신이므로 인간 능력을 초월해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체험적으로 알고 믿고 있다. 비물질적 존재자이신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을 통해 자신을 믿게 하셨고(시19:1-4, 롬1:20) 사람에게 선악을 구별하는 양심이 있고(벧전3:16) 사람이 위급할 때 신을 찾는 본성이 있는 종교적 동물이므로 사람의 양심을 통해 자신을 믿게 하셨고,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을 증거 하시므로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요8:42)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 (요14:9)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시고(눅23:46) 눈으로 보고 믿지 말고 증거를 보고 믿어라 하셨으니, 비물질적 존재를 물질에서 찾는 어리석은 자 되지 말아야 한다.

3. 무형체의 존재(無形體存在)이시다

어떤 고정된 형체가 없다. 창1:26-절이하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한 말은 인격성을 두고 하신 말씀이요, 육모를 두고 한 말씀이 아니시다.
또 유대적인 하나님으로 알며, 백인 흑인 황인 형체로 착각하면 안 된다. 하나님은 유형적인 형체를 가진 존재가 아니고 무형적 인격 존재자이시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아버지를 보여달라 할 때 곧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다고 하셨다(요14:7) 도성인신하신 예수님과 같다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은 무형체 존재이심을 알려 주시는 말씀이시다.

4. 비시공간적 존재(非時空間存在)이시다

시간과 공간에 제한을 받지 아니한다는 말이니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11번 나타나신 것같이, 잠겨진 문을 통과하여 제자들에게 나타내신 것 같이, 공간에 영향 제한을 안 받고, 시간에 장애 받지 아니 하신 것과 같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미국에 있는 자나 한국에 있는 자나 소련에 있는 자나 동시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5. 영원 자존적 존재자(永遠 自存的 存在者)이시다

무엇에 유출이나 창조물이나, 출생이 아니고, 어디서 생겨짐도 아니다. 누가 생겨지게 함도 아니고, 시간과 상관없이 태초(시작)와 상관없이, 영원히 스스로 존재하신다.(출3:14)
근원이나 원인이나 협력없이 스스로 계신분이요,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히 계신 자이시다. 자존 자이시기 때문에 자신만이 자기를 계시 할수 있다.

6. 생존자(生存者)이시다

하나님은 무생채(無生體)로 그냥 하나의 존재하심이 아니고 하나님 자체적으로 능력적으로 근원적으로 생명자로 생존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세계는 생명세계요, 빛의 세계요, 사랑의 세계요, 의의세계로서 날마다 날마다 끝없이 새로워지는 세계이다(계22:1-6)

7. 계시된 존재자(存在者이)시다

예수님과 진리와 영감으로 나타내지 아니 하셨다면 영원히 숨겨진 존재자일 것이나, 예수님과 진리영감으로 스스로 존재하신 그분을 나타내시므로 그분이 어떤 분인가를 알게되고, 믿게되고 영생을 얻게 된 것이다.
성경계시로(계1:1-, 욥11:7-11)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나타냈다(시145:16-17) 도성인신하신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소원과 목적성을 다 교시하셨고, 성경을 통하여 오늘도 하나님의 소원성과 목적성을 알려 주시고, 거기에 맞추어 살게 한다.

8. 내재적 존재자(內在的 存在者며) 초월자(超越者)이시다

성령으로 인간 내에 존재하시고, 또 초월하여 계신다.
온갖 피조물과 초월해 계시므로 접근할 수 없고, 사단이나 죄나 인간이나 어떤 피조물이 속화시키지 못한다. 인간이 하나님을 향하여 욕을 한다해도 욕이 초월자 하나님께 접근하지를 못한다(욥22:1-3)
스스로 인간에게 찾아와서 접근하시고 내주 하므로 연합이 가능하다.

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합리적 증명(合理的證明)

옛날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몇 가지 신 존재에 관한 합리적 논증들이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 네 가지를 간단히 언급한다.

1. 실체론적 논증(Ontological Argument)

실체론적(본체론적)논증은 하나님의 존재를 하나님에 자체 존재에 두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존재 바탕을 본인 자기 안에 둔다. 하나님은 독립적인 존재이시다. 하나님 자신 외에 그 무엇에도 의존하지를 않는다.
만일 하나님의 존재 바탕을 다른 존재에 둔다면 지음 받을 때가 있으므로 피조물이 될 것이다.
인간은 존재 바탕을 낳아 주고 기르신 부모에게 두지만, 하나님은 ‘자기 존재 바탕을 자기 안에 둔다’
실체론적(實體論的) 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에이미(εἰμἰ =being= 실재
존재)에서 인출되었다. 이러한 신 관념 속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이 논증은 안센(Anselm), 보나벤처(Bonaventure), 데칼트(Descar tes), 사무엘 클락(Samuel Clarke), 라이프닛츠(Leibnits), 등 기타 사람들에 의하여 수납되고 지지되었다.
이들 중에 가장 유명한 제의 자는 안셈(Anselm A.D. 1033-1109)이다. 안셈은 기독교의 신앙이 계시에 의한 것이요, 인간의 철학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도 신앙인은 이성(理性)을 사용하여 자기가 믿는 것을 더욱더 완전히, 그리고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이성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관념과 개념이 있는 것을 보니 그 관념의 실체이신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논증이다.
사람은 어리석은 자가 아닌 이상 그가 불신자라 할지라도 절대적으로 완전한 실재의 관념을 가지고 있다. ‘사람은 무한히 완전한 존재에 대한 관념을 가지고 있다’. 고로 ‘무한히 완전한 존재는 반드시 존재한다’ 라고 논증하였다.(전3:11)
 
2. 우주론적 논증(Cosmological Argument)

우주론적 논증(宇宙論的 論證)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과률(因과律)에 의
하여 증명하라는 논증이다. 즉 나타나 보이는 현상과 결과를 가지고 원인을 추구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논증이다.
우주론적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κὸσμος(코스모스 = 세상, 세계)에서 인출되었다. 이 논증에 의하면, 존재하는 모든 것들마다 존재의 원인이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존재들은  존재바탕을 그 자체 내에서 찾지 못하므로 존재의 원인을 추구하여 존재를 규명하는 논증이다. 그 존재의 원인인 존재자가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이시라는 논증이다.(히3:4)
이 논증은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시세로(Cicero)를 거쳐 중세기의 많은 철학자와 신학자들이 이용한 논증이며, 근대에는 죤 록크(J, Lock), 라이프닛츠(Leibnitz), 볼프(Wolf) 등에 의해 본격적으로 진술되었는데 이 논증은 모든 논증 가장 단순한 것으로 인과률(茵果律)의 직각(直覺)에 기초한다.
우주의 존재를 인과법칙에 적용시켜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직접 경험하는 세계는 절대적 필연의 존재 없이는 존재 못
한다 하며, 경험적 사물의 존재로부터 출발하여 인과률을 찾아 존재의 근거를 더듬어 올라가 그 제일 원인을 추구하여 드디어 자기존재의 근거를 스스로 자기 속에 간직하고 있는 필연적, 실질적, 독존적 존재자를 시인하는데 이른다는 것이다.

3. 목적론적 논증(Teleological Argument)

목적론적(目的論的) 논증은 모든 피조물 세계의 질서와 목적을 통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였다. 목적론적이란 단어는 헬라어 텔로스(τὲλος=목적)에서 인출되었다.
이 논증은 우주의 질서와 목적을 보면 반드시 그 배후의 영원자존, 전지, 전능, 지혜의 하나님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는 논증이다.
이 논증은 신 존재 증명에 관한 논증 중 가장 인기 있고 가장 오래된 논증으로 곧 소크라데스(Socrates)가 제창한 이래 플라톤(Plato), 시세로(Cicero), 어거스틴(Augustinus)을 거쳐 근세에 이르기까지 거듭 거듭 논증되어 왔다.
우주 만물은 뜻과 목적이 있어 존재하며 그 원인은 신의 존재에서 유래한다는 논증이다. 즉 이 우주는 어디서 보나 삼라만상이 단절 모든 혼돈한 상태에 있지 않고 상호 관련되어 있으며 또 질서 정연하여 통일, 조화, 조직, 미관(美髖)이 있어 위대한 지혜의 힘으로 한 의도에 맞춰서 모든 것이 배치되고 정돈되어 있음을 뚜렷이 볼 수 있다.
이것은 맹목적인 운동 혹은 세력의 우연한 결과라고 볼 수 없고 여기에는 반드시 일대지혜(一大智惠)의 존재가 있다는 것이다. 우주의 합목적성(合牧讁性) 즉 우주의 질서는 사물의 자체에서 솟아 나왔다고 볼 수 없으며, 우연하게 자연이 스스로 합하여 위대한 통일과 의도를 가지게 되었다고는 도무지 생각할 수 없고, 거기에는 반드시 질서를 세우는 이성적 원리가 있었을 것이며, 이 대자연의 근저에 하나의 숭고한 원인의 존재 즉 신을 부인할 수 없다는 증명이다.

4. 도덕적 논증(Moral Argument)

도덕적 논증(道德的論證)은 인간의 양심의 소재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논증이다. 도덕적 논증은 헬라어 συνεὶδησις(쉬네이데-시스= 양심)에서 인출되었다.
사람은 영적, 인격적, 도덕적, 존재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옳고 그릇됨의 판단하는 도덕적 감각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도덕적 감각은 어디에서부터 왔는가?
이와같은 존재는 반드시 영적, 인격적, 도덕적 존재이신 하나님을 떠나서는 존재 할 수 없다. 고로 하나님은 존재한다. 양심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요, 도덕률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도덕적 양심을 주신 하나님을 증거 하는 증인이다.
우리 양심이 하나님을 증거하며 하나님을 찾아 나아간다.  양심을 주신 하나님은 공의롭고 자비로운 하나님이시다.
양심은 영혼과 육신의 감독자요, 도덕적 판단의 시행자요, 선과 악을 판단한 후에 선을 행하고 악을 버릴 것을 권면하는 의지의 표현자이다. 양심은  그것을 부여한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의를 추구한다.(롬2:14)
이 논증은 특히 칸트(Kant)가 제창한 것이다. 칸트는 실천적 정언명법(定言命法)=categorical imperative)에서 출발하여 입법자이며 심판자로서 인간에게 명령할 절대 권리를 가진 존재를 추리하려 하였다.
우리가 만일 우리의 도덕성을 고찰한다면 필연적인 의무의 법칙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즉 “네 의지가 항상 세계와 영원에 보편적인 입법의 원리와 부합하도록 행 하여라” 하는 양심의 법칙이 있다.
이 법칙은 경험에서 온 것이 아니라 전연 선천적인 것이다. 그리하여 이 도덕률은 항상 우리에게 중대한 진리 곧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는 것이다.

5. 평가

첫째로, 신자들은 이 논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신자들의 신앙은 이 논증들에 의한 것이 아니고, 다만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논증들로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시킬 수 없다는 점이다.
둘째로, 그러나 이 논증들은 각자가 독립적으로 의심할 수 없이 인격적 하나님의 존재를 승인하도록 절대 완전한 증명을 주지는 못하지만 이미 믿는 신자들에게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맹목적이 아니라 합리적인 것을 보여 주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신앙의 합리성을 위한 증언으로 중요하다.
그리하여 기독교인이 기독교 대적을 만날 때도 이 논증으로 그를 확신시킬 수는 없지만, 침묵은 시킬 수 있으며, 또한 전도의 과정에 한 기구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六. 하나님에 관한 지식(知識)

1. 하나님은 불가완해(不可完解)하나 알 수 있음

기독교는 한편으로 하나님은 불가완해자(不可完解者)이지만, 다른 한편
으로는 그가 알려질 수 있다는 것과 그를 아는 지식이 구원에 절대적 요건임을 고백한다.
소발과 이사야는 하나님은 완해 할 수 없음을 강조하였다(욥11:7 , 사40:18 ,55:8-9) 그러나 동시에 예수님과 요한의 진술을 보면 오히려 알려 질 수 있다고 한다(요17:3 , 요일5:20, 사11:9 참고)
그러므로 이상의 구절들에 반영된 두 가지 개념이 항상 병행하여 기독교교회에 주창되어 온 것이다. 그리하여 초대교회 교부들은 불가견적(不可見滴) 하나님은 발생하지도 않고 이름할 수도 없고 영원하시고 완해할 수 없으시고 변할 수 없는 실유인 동시 또한 하나님은 로고스 안에 자기 자신을 계시하였으므로 구원을 위하여 알려질 수 있다고 고백하였다.
스콜라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실유와 성질을 구별하고 주장하기를 우리는 하나님의 본체적 실유는 무엇이나 알지 못하나, 하나님이 자신의 속성들에서 자신을 계시할 때, 그의 성질의 얼마를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이와 동일한 일반적 개념은 종교개혁자들에 의하여서도 표현되었다.
루터(Luther)는 “계시된 하나님”과 구별하여 “숨겨진 하나님”을 말하였고, 칼빈(Calvin)은 하나님의 본체의 지식은 불가완해 하나 그의 성질의 지식은 알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하나님의 도움 없는 인간 이성에 의하여 일반계시로부터 하나님에 관한 참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스콜라 신학자들과 동의하지 않았다(스콜라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계시가 자연에 계시된 것을 성경보다 더 강조함). 물론 종교개혁자들이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물로부터 하나님의 성질의 얼마를 배울 수 있음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직 성령의 조명하는 감화 밑에서 특별계시로부터만 하나님에 관한 참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개혁파신학은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모든 면에 빠짐 없이 완해하여 그에 관한 철저하고도 완전한 지식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동시, 오히려 하나님이 능히 알려질 수 있음을 주장한다. 이것은 분명한 성경의 교리이다.

2.하나님에 관한 모든 지식의 선행 조건인 자기계시(self-Revelation)

 ① 하나님은 자신에 관한 지식을 사람에게 전달하신다.

카이퍼(Kuyper)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으로서의 신학은 다른 모든 지식과는 중요한 점에서 다르다는 사실에 주의를 환기시킨다.
다른 모든 학문의 연구에 있어서 사람은 자기 연구의 대상 위에 그 자신을 두며 또한 능동적으로 그 대상으로부터 자신이 가장 적절하게 여기는 방법대로 지식을 끌어내지만, 신학에서는 그의 지식의 대상위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아래에 위치한다.
다른 말로 하면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알게 하시는 한에서만 그를 알 수 있다.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우선 사람에게 지식을 전달하시는 주체이시며, 또한 오직 사람이 계시에 의해 그에게 전해진 지식을 전유(專有)하고 숙고하는 한에 있어서만 사람에게 대한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계시없이 사람은 하나님에 관한 아무런 지식도 결코 얻지 못 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을 객관적으로 계시하신 후에라도 인간 이성이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신앙의 눈에 열어 보여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성령의 지도아래 성화된 인간 이성을 하나님 말씀의 연구에 적용함으로써 그에 관한 언제나 늘어가는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어쨌든 신학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 없이 전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 고수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우리가 계시에 대해 말할 때는 단어의 엄격한 의미에서 그 용어를 사용한다.
하나님은 피동적인, 단순한 “현현되심”(bseosrning manifest)이 아니라 그가 능동적으로 자신을 알게 하시는 것이 계시다. 그것은 많은 현대주의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사람편에서 하나님에 관한 언제나 늘어가는 발견으로 이끄는 깊은 영적 통찰이 아니라, 하나님편에서 자기 전달의 초자연적인 행동, 즉 목적 있는 행동이다.
하나님은 단지 그가 자신을 계시해서야만, 또는 계시하시는 한에서만 알려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랄 것은 없다.  
“사람의 사정을 사람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고전2:11)고 바울은 말한다.
성령은 모든 사정들, 심지어 하나님의 깊은 사정들까지라도 살피시며 그것들을 사람에게 계시하신다. 하나님은 그 자신을 알게 하셨다.
하나님 자신안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에 관한 원형적(原型的)인 지식과 병행하여 계시에 의해 사람에게 주어진 그에 관한 모형적(模型的)인 지식도 있다. 후자는 전자에 대해 마치 사본과 원본과의 관계와 같다.
하나님에 관한 우리의 모든 지식은 자연과 성경에서의 자기 계시에서 유래된다. 그러나 자연은 불충분하며 성경은 완전하다고 본다.
따라서 하나님에 관한 우리의 지식은 한편으로 모형적이고 유추적이지만 또 한편으로 역시 참되고 정확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자기 스스로 가지신 원형적 지식의 사본이기 때문이다.

② 하나님에 관한 본유적(本有的)지식과 후천적 지식

일반적으로 하나님에 관한 본유적(생득적)지식과 후천적 지식이 구별된다. 이것은 엄격히 논리적인 구별이 아니다. 왜냐하면 요컨대 모든 인간 지식은 후천적이기 때문이다. 본유적 개념의 이론은 신학적이라기 보다 철학적이다.
그 이론의 근원은 이미 플라톤의 이데아(Ideas) 론에서 발견되었고 보다 더 발전된 형식으로 시세로(Cicero)의「하나님의 본성에 대해」에 나타나 있다.
현대철학에서 데칼트(Des-Cartes)에 의해 최초로 가르쳐졌는데 그는 하나님의 개념을 본유적(생득적)으로 간주하였다. 데칼트는 출생 때부터 인간 의식에 나타난 어떤 개념들이 존재하며, 그 중에서 하나님의
개념이 가장 두드러진 것이라는 형식을 취하였다.
한편으로 후천적(획득적) 지식은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연구에 의해 얻어진다. 이 지식은 사람의 마음에 자연적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지식에 관한 의식적이고 지속적인 추구에서 결과한다. 그것은 인식과 숙고, 추리와 변론의 지속적인 과정에 의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






  제 2 장

   하나님의 명칭들
    (The Names of God)


一. 하나님의 이름들의 개관

 시편72:17에 “그 이름이 영구함이여 그 이름이 해와 같이 장구하리로다 사람들이 그로 인하여 복을 받으리니 열방이 다 그를 복되다 하리로다”
명칭(이름)들은 중요하다. 하나님의 명칭은 더욱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명칭들은 단순한 문자가 아니다. 명칭들은 고유한 것이어서 그 명칭을 가진 분의 명예(名譽), 인격(人格), 개성(個性), 직분(職分0 등을 나타낸다.(마1:21)
특히 하나님의 명칭들은 단순한 명칭 이상의 큰 의미들을 내포하고 있다. 하나님의 명칭은 하나님 자신이 정하신 자신에 관한 이름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특별계시로 알려 주셨다.

하나님의 명칭들은 첫째: 하나님 신의 기원(起源)을 가진다.
                  둘째: 하나님의 존재를 계시(啓示)한다.
                  셋째: 하나님의 본체(本體)와속성(屬性)을 계시한다
                  넷째: 하나님의 사역(使役)(일들)들을 계시한다.
                  다섯째:인간이 받을 구원(救援)의 효과를 계시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고, 찬양하고, 선포하고 효과를 얻어야 한다.(출9:16 , 신28:58, 시34:3, 88:12 요12:28)
하나님의 명칭은 사람같이 인간의 작명(作名)이 아니다. 하나님 스스로 이름을 취하시고, 특별계시(特別啓示)로 알리셨다.
하나님은 자신의 명칭들을 우리를 위하여 특별 계시로 알려 주셨고, 하나님의 특별 계시 안에서만 바로 인식(認識)될 수 있다. 특별계시 밖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은 자신을 알리시기를 명칭을 통하여 알리신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은 사람과 인격적 교제(交際)를 가지신다.
우리는 하나님을 올바르게 알기 위하여 여러 하나님의 명칭을 연구해야 한다. 원문의 명칭을 연구하므로 본래의 의미를 얻게 된다. 본 뜻을 터득하므로 그 성호(聖號)를 경외(敬畏)하며, 찬양(讚揚)하며 선포(宣布)한다.

二. 구약(舊約)에서의 하나님 이름(名稱)

(1) 엘(לꔟ)(민23:22 신10:17)

 ① ‘엘’은 고대 샘 족(族)세계에서 하나님을 가리키는 가장 단순한 명칭으로 자주 사용        되었다. 엘은 울(לוּא)에서 유래한 것으로 ‘제일, 강한, 힘있는’ 뜻이다.
     하나님은 우주 위에 위엄과 권위의 대 주제이시다.
     민수기 23:22에서 ‘엘’ 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한 능력의 하나님으로 묘사” 되       었다.
    신명기 10:17 에 ‘엘‘ 은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 으로 묘사 되었다.

 ②엘의 복합명사들
  ㉮엘 샤다이(יꕈꚂ  לꔟ ) =‘능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뜻이다.
    샤다이는 산(山)이라는 뜻이다. 높은 산에 계시는 전능의 하나님을 말한다.(출17:1,         28:3, 35:11, 출6:2)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하시다. 99세에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게 하셨다.(창35:11)
  ㉯엘 엘욘(ןוֹיꗡ꘡  לꔟ ) =‘지극히 높으신 분’ 뜻이다. (창44:24, 출19:3)
    멜기세덱으로 아브라함을 축복 때 처음 사용하였다. 창14:18-20 절에 나온다.
  ㉰엘 올람(םꗚוֹע  לꔟ ) =영생하시는 하나님을 뜻한다. 창21:33 사40:28 절에 나온다. 시      간을 측량할 수 없는 장시간 즉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하나님, 시간을 창조하시고      시간을 주관하시고, 시간을 초월하신 하나님을 말한다.
   ㉱엘 로이(יאꙤ  לꔟ )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뜻한다.(창16:13)
    하갈이 이스마엘 출산 전에 하나님을 부른 칭호이다.

(2) 엘로힘(םיꕙלꔤ ) (창1:1. 17:1 출6:3, 고후6:18, 계1:8)

    하나님 명칭 엘의 복수인 엘로힘이다.(창1:1)  엘로힘은 인류역사에 제일 처음으로        계시된 하나님의 명칭이다. 엘로힘 명칭은 성경에서 2,570번 나타난다. 참되신 하나       님에게 사용되었다.
  ①엘로힘은 ‘강한자’를 가리킨다(출20:20) 능력이 강한 하나님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      시다. 이 명칭은 하나님의 주권, 창조,  보존, 섭리의 사역과 관련하여 사용하였다.
  ②엘로힘은 ‘경외’의 하나님을 가리킨다.
    존경과 능력을 표시하며, 경외를 나타냄은 사람들의 예배의 대상이다.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두렵고 떨림으로 섬기라) 하라고 명하셨다(신19:14, 시2:11,19:9,      잠1:7)
    아담이 범죄 후에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나이다”(창3:10)
    야곱이 벧엘에서 돌 베게하고 자다가 깨어 “두렵도다 이곳이여 전능하신 하나님의       전이요 하늘의 문이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 나타나신 하나님을 보고 두려워 했다(출20:20)
  ③엘로힘은 유일하신 하나님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일체 안에 삼위가 계시므로 복수로       사용되셨다.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창1:26)말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말씀 하       신다
    신4:35절에 하나님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
    신명기 6:4절에 오직 하나인 여호와이시니
    왕하 19:19절에 주 여호와는 홀로 하나님이신 줄을 아나이다.
    고전8:6절에 우리에게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딤전2:5절에 ‘하나님은 한분 뿐이시오 중보도 한 분이시니’ 했다.
    하나님 한 분 신 외에는 전부가 귀신 역사뿐이다.
    
  ④엘로힘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가리킨다.
    엘로힘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인격의 하나님으로 표    
    현 하셨다. 엘로힘 하나님은 본체는 하나요, 삼위(三位)가  계시며  성부 성자 성령       삼위는 영광 권능 섭리역사가 동등이시다.
    창1:26절에 ‘우리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했다.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 안에 삼위(인격)가 계신다.

(3) 예흐와(הꕯꕜꖾ ) =(주 하나님 = 여호와)
    
   예흐와 하나님은 모세에게 처음으로 보여준 하나님이시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이     계시로 보인 하나님이시다.    
   이 예흐와(여호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독점적으로 사용한 명칭이다.
   예흐와(여호와)는 제일 많이 사용된 명칭으로 약6,823번이나 기록되어 있다.
   창2:4절에 처음으로 사용되어 나타났다.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고 했     다. 아담과 하와가 “내가 여호와로 득남하였다”  고 했다.(창4:1)
 
  ⓛ 예흐와는 영원 자존자(自存者)를 강조한다.
    예흐와란 명칭은 히브리어 하야(הꖷꕗ)에서 유래되었다. 하야는 존재하다 뜻으로 예흐      와는 자존성을 강조한다. “스스로 계신 자”를 말하며, 창조나 유출이나, 파생된 존재      가 아니다.(창21:33, 출3:14, 6:3, 90:2)
    하나님의 존재 바탕은 본인 자기 안에 둔다. 하나님은 독립적 존재이시다. 하나님은      자신 외에 그 무엇에도 의존하지를 않는다.
    만일 하나님의 존재 바탕을 자신 밖에 둔다면 지음을 받은 때가 있으므로 피조물이      될 것이며, 피조물은 유한하고 불완전하다. 유한하고 불완전한 피조물은 하나님이 될      수가 없다.
    하나님은 영원토록 자존하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모든 존재의 근원이시며, 알파      와 오메가시며, 원인이시다. 인간은 존재바탕을 낳아주고 기르신 부모에게 두지만 하      나님은 ‘자기’ 존재바탕을 자기 안에 둔다.
  
  ② 예흐와는 언약의 하나님을 강조한다
    언약의 하나님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명칭이다. 하나님 백성과의        
    관계면에서 언약을 가진다. 인류대표 아담과 행위언약을 가졌다.
    택한 백성을 대표하는 예수그리스도와 구속 언약을 맺고, 피택된 죄인들과 은혜언약      을 맺으셨다.
    언약을 충실히 지켜 가시는 하나님은 영원히 변함 없이 언약을 수행하신다.(창           2:15-17, 3:14-19, 12:1-3)

  ③ 예흐와는 구출자로 강조한다
    애굽의 종사리에서 모세를 통하여 구출하셨다.(출6:6, 15:13, 출20:1-)
    예흐와(여호와)의 구출은 독재자를 죽이고 폭동을 일으키는 해방신학 민중신학과는       다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사리에서 부르짖을 때에 고통의 소리를 들으시고, 자유안으로       인도 구출하였다.
    예수님은 로마시대 지배 하에서 죄에서 구출, 악령에게서 구출하여 진리 안에 자유       케 하셨다. 독재자에게서 구출했다 하여도, 죄와 악령아래 있다는 진정한 구출이라고      는 볼 수 없다.
    육에 구출만 중시하지 말고 진정 영혼과 육의 구출이 예흐와의 구출이다.

(4) 예흐와(הꕯꕜꖾ 여호와)의 복합명사들
  
   여호와 명칭에 부가 된 사역적 명칭(使役的 名稱)이다.
  
   ① 예흐와 이레(הꔟꙣꖹ  הꕯꕜꖾ ) = ‘여호와께서 준비하여 주시다’ 뜻이다.
      이삭이 아버지께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 있습니까? 할 때에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        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22:7-8) 라고 대답했고,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했다.
      “여호와 산에서 준비하더라”(창22:14) 한 말씀에서 유래되었다.
      여호와 이레는 어린양 예수그리스도이시다.(요1:29 36) 바울은  롬8:32절에 자기 아        들을 아끼지 아니하고 내어 주었다고 했다.(계5:12)
  
   ② 예흐와 로페카(ꗘꔟפꙡ  הꕯꕜꖾ )=‘너희를 치료하시는 하나님’ 뜻이다.
      로페카의 동사 라파(א꘩Ꙝ)는 치료하다, 고치다, 붕대를 감다, 정상적으로 회복하다        는 뜻으로 진술되었다.(출15:26)        
      병은 육병 마음병(정신병) 영적병(죄병) 있다. 이러한 병은 모두가 죄에서 온 것이        다.
      예레미아30:15 절에 “어찌하여 네 상처를 인하여 부르짖느뇨---  네 죄악의 큼과        죄의  많음을 인하여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였느니라” 고 하였다.
      사1:5-6 절에 이스라엘의 병든 모습을 보고 “너희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며 발바닥에서부터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        은 흔적 뿐이여늘 그것들을 막지도 싸매지도, 기름으로 진정시키지도 못했다”고 하        였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심령을 치료하고, 죽은 자를 살리고,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짖지 말라고 미래치료 말씀을 주셨다(요5:14)
      예흐와 로페카 되신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영육간에 강건(康健) 하게 살기를 원        하신다.

   ③ 예흐와 닛시(יꘗꗼ  הꕯꕜꖾ ) = ‘주님은 나의 깃발’ 뜻이다.
      옛날에 전투시에 깃발을 들고 출전하였다. 모세는 아말렉을 멸하고 승리를 나타내        는 제단을 쌓고 승리기념을 하면서 하나님은 예흐와 닛시(출17:15) 했다.
      우리는 영적 전쟁에서 예흐와의 닛시 깃발을 들고 참전해야 하며, 전쟁은 여호와         께 있으며, 승리는 이미 보장되어 있다.
      성경은 현세의 지상교회를 전투적교회로, 성도는 십자가 군병이요, 성도는 일생동        안 영적전쟁을 하는 자며, 공중의 권세 잡은자와 싸우고(엡6:12), 무신론 사상과 싸        우고(시10:4 14:1) 육신의 부패성과 싸우고(갈5:19-21) 타락한 자유주의와 싸우고,         그릇된 신비주의와 싸우고 비 진리와 타협하지 말고, 세속화되는 교회와 싸워야          한다.
      시20:5 에 “우리가 너희 승리로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깃        발을 세우리라”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        하노라”.(고전15:17)
      
   ④ 예흐와 샬롬(םוֹלꚂ  הꕯꕜꖾ ) = ‘여호와는 우리의 평화’ 란 뜻이다.
      한국어 성경은 평화, 평강, 평안, 등으로 번역되었다. 구약에서는 가장 의미 있는         단어로 사용되었다.
      하나님께서 사사 기드온으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을 미디안족속의 억압에서 구출        했을 때에 제단을 쌓고 이름을 예흐와 샬롬이라 불렸다(삿6:24)
      샬롬(평화)은 소란 전쟁 무질서로 부터 자유를 말한다. 평화는 전쟁 무질서 소란의        반대를 말한다. 평안 평화 화평은 마음의 평온, 건강한 정신상태, 걱정 없는 생활         을 나타내는 고요한 상태를 말한다.
      유태인의 가장 중요한 인사말이며, 평강의 하나님(롬15:13, 16:20 빌4:7, 살전5:23)         평강의 왕 예수 그리스도(사9:6, 히7:2 요14:27)  안위의 성령(요14:16, 15:26, 16:7)        께서 주시는  평안만이 참 평안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희생하므로 하나님과 화목되었고, 화평이 이루어졌으며, 평안        을 얻게 되었다.(롬5:10,21)
      우리가 예흐와 샬롬을 어떻게 받아 누릴 수 있을까? 예수님을 믿고, 죄를 회개하         고 성령께 순종하면 늘 평안을 얻게 된다.(빌4:9)

   ⑤ 예흐와 츠바오트(תוֹאꔧꙃ  הꕯꕜꖾ ) = ‘만군의 여호와’ 란 뜻이다.  하나님 이름에 만        군(萬軍)이 첨가된 것이다. 이 용어는 군사적용어로 하나님은 하늘에 천사 군대의        총사령관이시다.        
      또 이스라엘의 군대의 총사령관이심을 나타낸다.(삼상4:4 17:45 삼하6:2)
      이 명칭은 이사야 예레미야 같은 선지자들로부터 하나님은 총사령관이요, 보호자         요, 지도자로 상기시켰다. 우리의 총사령관이시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에 ‘만군의 여호와를 의지한다’ 했다.  말라기서에 나타나        신 분은 만군의 여호와다. 말3:7-12절에 나의 규례를 버린자, 십일조와 헌물을 드         리지 않는 자는 저주하고 지키는 자는 만군의 하나님이 창고에 넘치게 복을 주신        다고 증거했다.

   ⑥ 예흐와 메카데쉬켐(םꗋꚉדּꙏꗱ   הꕯꕜꖾ) = 의(義)여호와(예흐와 치드케누)께서 역사         하여 “너희를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란 뜻이 예흐와 메카데쉬켐 이다.
     의에 주님이 ‘우리를 의롭게 하셨으며’ 거룩하게 하셨다 죄와 악령으로 더러워진 인       간은 영원 멸망인데, 예수님의 의를 입혀주셨으며, 의로 거룩하게 하여 의에 나라        천국에서 영생하도록 거룩하게 만들어 주셨다.
     레 11:45절에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했으니 거룩하신 하나님은
                ①존재적으로 거룩이시며
                ②위엄적으로 거룩이시며
                ③도덕적으로 거룩이시며
                ④사역적으로거룩이시다(레11:45, 19:2, 벧전1:16,2:5,고전3:17)
                
   ①존재적 거룩자 : 하나님 존재자체가 진리이다. 변질 변색 속화가 없는 진리자체이다.       거룩이란? 변질이 전혀 없는 진리자체를 보존하는 것이 거룩이다. 금덩어리를 진흙       에 넣어도 금덩어리 그 대로 있는 것이 금으로 거룩이다.
     물질계것과 영계것으로 하나님의 모습이 변질되지 않고 그대로  존재함이 거룩이다.
    ②위엄적으로 거룩이시다: 하나님의 권위와 권세 힘은 영원히 그대로 유지한다.
    ③도덕적으로 거룩하시다: 지식, 명철, 선, 사랑, 의 능력이 변함없이 그 인격대로           존재한다.
    ④사역적으로 거룩하시다 :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거룩하시다. “하나님이 하시는 그        모든 행위는 의로우시며 그 모든 행사에 은혜로우시도다”(시145:17) 우리를 죄에서        떠나 진리사람 성령사람 성화사람을 만들어 가시는 분이시다.
      사역적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은 자기의 거룩함을 닮아 하나님 같은 자 만들어 가시        는 일을 하신다. 할렐루야!

 ⑦ 예흐와 로이(יאּꙦ  הꕯꕜꖾ ) = “여호와는 나의 목자” 란 뜻이다.
    로이란 단어는 ‘먹이다, 인도하다, 목양하다 의미이다’. 하나님을  이스라엘 백성의 목      자로 표현했다.(창49:24, 삼하7:8, 시23:1-6, 시80:1, 시28:9)
    신약에서 예수그리스도는 선한 목자라 했고(요10:14) 위대한 목자, 목자장이라 했으       며(히13:20, 벧전5:4) 성도 우리를 먹이고 입히고  보호하고 인도하고 우리의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신다.

 ⑧ 예흐와 삼마(הꗲꚂ  הꕯꕜꖾ ) = ‘여호와께서 임재하신다’ 란 뜻이다.
    에스겔 선지자가 환상 중에 이스라엘의 회복이 70년 포로 지난 후에 있을 것을 환상      을 통하여 보게 되었다.
    그 환상 중에 성전에 계시는 여호와를 보고, 그 성읍의 이름을 예흐와 삼마라 하리       라는 말씀을 받았다. 즉 주님이 거기에 계시다라고 하였다.(겔48:35)
    에스겔의 반복적인 예언은 “주님은 다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거하실 것이다” 였다.      신약시대는 주님이 오셔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는 임마누엘(요1:14, 사7:14        9:6 마1:23)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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